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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이중규제에 고민 빠진 강남 재건축, 사업 강행할까

김기덕 기자I 2019.06.28 04:00:00

HUG 규제 이어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사
후분양 전환하거나 공급 일정 무기한 연기
대단지와 소형 단지 간 차별화할 듯
"공급 줄고 희소성 부각돼 집값 재상승"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이네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해 후분양을 고려했는데 민간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면 사실상 이중규제가 아닌가 싶네요.”

정부의 연이은 분양가 규제에 강남 재건축 단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HUG의 강화된 분양가 심사 기준을 피해 후분양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 끝판왕 격인 분양가상한제 카드를 꺼내 들 것을 시사해서다. 서울 등 규제 지역에 대한 분양시장 규제 강화는 결국 ‘재건축 단지 분양 연기→ 주택 공급 부족→ 새 아파트 희소성 부각→ 주택시장 재상승’이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전면 확대한다고 해도 후분양 추세로 전환하는 분양시장 판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재건축아파트 후분양 속속 전환

업계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을 강화하자 후분양을 선택하거나 분양 일정을 무기한 연장하는 재건축 단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서울 등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 분양가 산정 시 주변 분양가의 100~105%를 넘지 않도록 한 이 제도는 지난 24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번 HUG의 분양가 통제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재건축 조합은 최근 대의원 회의를 열고 예정됐던 일반분양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강남권에서 후분양제가 적용되면 2008년 6월 ‘반포자이(반포주공3단지 재건축)’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이 단지 조합은 주변 시세와 입지 등을 고려해 3.3㎡당 분양가를 4700만원 이상으로 요구했으나, HUG가 개정된 규정 적용으로 이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하자 분양 일정을 미뤘다. 지난 4월 인근인 일원동에서 분양했던 ‘디에이치 포레센트’ 일반분양가를 적용하면 3.3㎡ 4569만원인데 이는 희망 분양가나 주변 시세에 비해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게 조합 측 주장이다.

[이데일리 김다은 기자]
재건축 단지가 몰린 서초구에서는 신반포3차·반포경남아파트를 통합 재건축하는 ‘래미안 윈베일리’도 사실상 후분양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외에도 올 하반기 이주를 계획 중인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나 방배13구역, 신반포4주구 등도 대단지들도 주택경기 상황에 따라 후분양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일반분양 물량만 5000가구에 달하는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도 후분양으로 갈지, 분양 일정을 더 늦출 지 고심하고 있다.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14년 만에 분양하는 새 아파트인 ‘브라이튼 여의도’는 고분양가 심사 기준에 발목이 잡혀 분양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후분양을 선택해 나중에 주변 시세와 비슷한 고분양가로 책정한다고 해도 정부가 재차 규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며 “높은 금리 부담과 자금 조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중소건설업체에 대한 지원책이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 강행해도…재건축 단지 “별 영향없다”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확대 카드를 빼들자 후분양을 고려 중인 단지들의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다. HUG의 분양보증 심사를 피해 주변 시세와 비슷한 분양가를 책정할 예정이었지만, 재차 분양가를 후려칠 수 있는 상황에 맞닥뜨려서다. 업계 전문가들은 규모가 큰 대단지와 중소단지 간 선택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행법상 민간택지나 공공택지에서 분양할 경우 모두 시·군·구의 분양가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후 선분양은 HUG의 분양가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후분양은 이를 거칠 필요가 없다. 후분양을 고민 중인 강남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사실상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다고 해도 HUG 규제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선택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과거와 같이 해당 제도 적용을 고려하다 금방 유예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송인호 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후분양은 최소 2~3년 후의 주택시장이 안정적으로 갈 경우를 가정하는 것이라 사업성이 월등한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선택하는 곳이 예상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며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면 사업규모가 큰 대단지는 손실을 우려해 분양 일정을 멈출 수 있지만, 수백가구에 불과한 중소단지는 후분양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후분양에 따른 분양가가 급등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후분양을 할 경우 분양가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조합이 새 아파트 희소가치를 반영해 주변 시세보다 비싸게 책정할 수도 있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서울 아파트 후분양이 늘어나면 향후 2~3년 간 공급 물량은 끊기게 될 것”이라며 “강남권의 주택 수요는 꾸준한 데 여러가지 규제로 공급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희소성이 높아져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전경.(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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