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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異야기]"삼성·LG랑 경쟁요? '마이웨이' 갑니다"

정병묵 기자I 2014.06.18 06:01:00

오텍그룹 강성희 회장 인터뷰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2000년 언저리에는 정부의 벤처 장려 정책으로 수많은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이때 등장한 벤처기업 중 10년 후에도 살아남은 곳은 1%밖에 되지 않는다. 오텍(067170)은 IT 벤처가 난무하던 시절 제조업(특장차)으로 창업했고, 10년 후에 사세를 키워 110년 전통의 세계적인 공조 회사인 캐리어에어컨 한국법인을 인수했다.

만년 적자를 기록하던 캐리어코리아(현 오텍캐리어)는 오텍에 인수된 해인 2011년 바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특장차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공조 시장에서 새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는 오텍그룹 강성희 회장을 16일 서울 양평동 오텍캐리어 연구개발센터에서 만났다.

◇“IMF 후 뛰어든 창업..2년 만에 코스닥 상장”

강성희 회장. 오텍캐리어 제공.
2000년 창립한 오텍은 앰뷸런스, 장애인 차량 등 특장차 전문업체다. 자동차 회사에게서 차량의 기본 틀을 넘겨받아 특수차량으로 개조해 판매한다. 강 회장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전문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기아자동차 협력사였던 서울차체(2001년 파산)의 특장차 사업부장으로 일하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 왔다. 당시 기아차가 부도나자 회사의 존립이 불투명해졌다.

“당시 회사에서 특장차는 주력 업종이 아니었어요. ‘직접 하면 잘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외환위기가 터졌죠. 지금 돌아보면 정신 나간 일이었지만(웃음) 아직 40대였고 별로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자동차 회사는 물론 조달청, 군, 제과업계 등에 쌓아 놓은 인맥이 많았고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특장차 사업부문을 넘겨받아 오텍을 설립했어요.”

기울어가던 회사는 강 회장에게 퇴직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직원 60명을 놓아 줬다. 직원들이 등에 지고 온 퇴직금은 그에게 엄청난 압박이었지만 동기부여이기도 했다. 뚜렷한 리더가 없던 특장차 시장에서 연구·개발(R&D)와 영업에 매진한 결과 2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톡옵션을 통해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크게 웃도는 돈을 손에 쥐어 준 건 덤이다.

“특장차 사업의 매력은 사건 사고가 항상 터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좋은 앰뷸런스를, 냉장차를 만들기 위해서 어디서 좋은 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여 뜯어 보고 연구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특장차 가격이 너무 낮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일본에서 앰뷸런스 한 대 4억~5억 원 하는데 우리나라는 8000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자 속에도 직원 더 뽑아..인수 1년 만에 흑자전환”

국내 특장차 업계 1위로 승승장구하던 강 회장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특장차 시장의 성장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던 때에 캐리어코리아가 매물로 나왔다. 캐리어코리아는 미국 최대 방위산업체 중 하나인 UTC의 계열사였다. UTC는 4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던 캐리어코리아의 새주인을 찾기로 했고 여러 업체가 경합한 끝에 오텍이 선정됐다.

오텍의 견실한 경영 성과와 장애인 전용차량, 앰뷸런스를 제조하는 ‘인본주의’ 기업철학을 높게 산 것이다. 2011년 오텍은 캐리어코리아의 지분 80%를 인수하고 이듬해 UTC로부터 냉동·냉장 쇼케이스 전문업체 캐리어냉장도 사들였다. 강 회장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본인 급여를 반납, 광고비로 쓰며 캐리어에어컨 알리기에 나섰다.

“적자 기업을 살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인력 감축, 비용 절감으로 손익을 개선하는 것. 또 하나는 매출을 더 늘리는 것이죠. 둘 다 옳은 방법인데 저는 후자에 더 방점을 찍었어요. 직원을 줄이지 않고 영업 인력을 오히려 더 뽑았습니다. 절약도 물론 했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어요.”

매출 600억 원에 불과하던 오텍은 캐리어에어컨의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 47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 LG와 경쟁 안 해..기업용 공조 시장 ‘넘버원’ 될 터”

국내 에어컨 시장에서 캐리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캐리어의 국내 에어컨 시장 점유율은 약 17%. 삼성, LG 등 대기업이 양분하고 있는 시장에서 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삼성, LG와 경쟁할 생각이 없다고 힘줘 말했다. UTC의 자회사인 엘리베이터 전문 업체 오티스코리아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공조, 엘리베이터, 보안 등을 통합한 ‘빌딩&인더스트리얼 시스템(BIS)’ 사업이 그가 추구하는 사업 방향이다.

강성희 회장(오른쪽)과 배우 이보영씨가 지난 2월 열린 캐리어에어컨 신제품 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다들 삼성, LG와 어떻게 싸울 거냐고 묻는데 저는 ‘왜 싸우느냐’고 답합니다. 오텍캐리어는 갈 길이 다릅니다. 가정용 에어컨 시장 외에도 기업용 공조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티스코리아와 매주 만나 엘리베이터, 공조를 결합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고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겁니다. 시장 점유율은 중요하지 않아요. 올해 7000억 원, 이후에 1조 원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강 회장은 오텍 같은 기업들이 성장해야 한국 산업 전반의 생태계가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기보다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다양한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술집에 가 보세요. 참이슬, 처음처럼이 소주 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맥주도 3개사가 독점하고 있어요.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일본만 해도 잘 나가는 에어컨 회사가 13개이고 소니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다이킨이 1등합니다. 우리나라는 전문 제품에 대한 다양성이 없는데 오텍이 그러한 토양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합니다.”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

1955년생으로 1981년 한양대를 졸업했다.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서울차체에서 특장차 영업담당 이사로 재직하다 2000년에 오텍을 설립했다. 2년 뒤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7년 터치스크린 전문 업체인 한국터치스크린을 인수했으며, 2011년 캐리어코리아와 이듬해 캐리어냉장을 인수했다. 뇌성마비 중증 장애우를 위해 고안된 특수 구기 종목인 ‘보치아’에 관심을 보여 서울특별시 장애인 보치아연맹 회장도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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