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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개혁 원년]강해진 회계에 ‘앗 뜨거’…전문가 모시기 열풍

이명철 기자I 2019.04.10 05:11:00

감사인 지정·내부회계관리 감사 시행…기업 대응 시급
올해 회계 전문가 40여명 감사위 선임…전년대비 83%↑
게임·바이오 등 코스닥 기업들도 회계사들 잇따라 영입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신(新) 외부감사법이 시행되면서 회계법인과 금융당국의 잣대가 크게 높아졌다. 자칫하다간 강한 제재는 물론 상장 폐지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전반에 확산됐다. 올해 감사인 지정과 표준감사시간이 도입되고 내부회계제도에 대한 감사도 시작하면서 외부감사는 더욱 깐깐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혼쭐이 난 기업들은 회계 전문가들을 확충하는 등 결산 능력 강화에 나섰다.

◇ 교수·회계법인 출신들 사외이사 몸값 높아져

상장사들 사이에서는 유례없는 ‘회계사 모시기’가 벌어지고 있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회에 신규 선임된 회계 전문가들은 총 42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23명을 선임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83%) 증가했다.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법인은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사외이사로 구성한 감사위원회를 둬야 한다. 감사위원 세 명 중 한 명은 재무·회계 전문가를 선임해야 하는데 예전까지는 재무 전문가 기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아시아나항공(020560) 등 회계 이슈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회계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감사위원으로 선임된 사외이사들을 보면 교수들의 비중이 크다. 아모레퍼시픽(090430)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회계학 박사 과정을 마친 최종학 서울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고려대에서는 한국회계학회장 출신 권수영 교수(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정석우 교수(SK네트웍스(001740))가 새로 선임됐다.

기획재정부 국가회계재도 심의워원이기도 한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네이버(035420)의 감사위원이 됐으며 LG(003550)는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인 한종수 이화여대 교수를 영입했다. 한국회계기준원 상임위원 출신인 김경호 홍익대 교수는 KB금융(105560)의 감사위원을 맡게 됐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들도 대거 투입됐다. 윤성복 전 삼정회계법인 대표는 올해부터 하나금융지주(086790) 감사위원으로 활동한다. 하나금융은 한국회계학회장을 역임한 양동훈 동국대 교수까지 두 명의 회계 전문가를 감사위로 구성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던 양일수 이정회계법인 대표와 이상복 동아회계법인 파트너는 각가 LG상사(001120), JB금융지주(175330) 감사위원이 됐다.

특이한 이력의 전문가들도 눈에 띈다. 서울도시가스(017390)는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낸 최진영 전 보험연수원장을 감사위원으로 뽑았다. 최 전 원장은 금감원에서 회계감독을 담당하는 전문심의위원으로 재직했다. 그룹 총수의 퇴진 논란을 빚었던 한진칼(180640)은 이번 주총에서 주인기 전 국제회계사연맹 회장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 중소·한계기업도 회계 역량 키우기 나서

자산 2조원 미만으로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어도 감사위를 구성해 회계 전문가를 선임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회계 처리 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전략이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 게임이나 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는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선임 사례가 늘고 있다. 전통 제조업이 아닌 산업의 회계처리가 화두로 떠오르자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6위(5일 기준)인 에이비엘바이오(298380)는 올해 주총에서 대주·삼정회계법인 등을 거친 김동윤씨를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했다. 이차전지 업체인 엘앤에프(066970)피엔티(137400)는 정재학 전 대경회계법인 대표와 정음세무회계사무소 소속 서용호씨를 감사위원으로 영입했다. 게임업체인 넵튠(217270)도 삼일회계법인 출신 이석훈 감사위원을 영입했다.

감사위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회계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곳도 있다. 영화 ‘신과 함께’를 만든 김용화 감독이 설립한 덱스터(206560)는 올해 주총에서 삼정회계법인 출신인 이현상 태경회계법인 상무가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팹리스 반도체업체 엘디티(096870)도 현재 공인회계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정수빈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경영 위기를 겪던 기업도 회계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기 시작했다. 올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서 졸업한 STX중공업(071970)은 감사위원으로 조인석 서우회계법인 본부장을 선임했다. 지난해 사업연도에 대해 감사의견 ‘한정’을 받아 상장폐지 처지에 놓인 영신금속(007530)은 이재학 호연회계법인 전무를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회사는 한국거래소에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며 내부역량을 강화하고 재감사를 통해 ‘적정’ 의견을 받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국제회계기준이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경영진들이 전문분야인 회계를 이해하긴 한계가 있다”며 “외부감사가 더욱 강화될수록 기업의 회계 전문가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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