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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파쇄지시’ 혐의 KAI 상무 구속영장 기각…檢 "수긍 어려워"(종합)

이승현 기자I 2017.09.14 00:38:29

法, "타인 형사사건서 증거인멸 소명 어려워"
檢, "증거인멸 아닌 증거인멸 교사…본인처벌 사건에 성립"
원가 부풀리기 이은 분식회계 수사 계획에 차질

서울 중구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서울사무소.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검찰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규모 회계사기(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현직 임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검찰은 이 임원의 신병을 확보, 분식회계 의혹을 파헤쳐 하성용 전 사장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영장기각으로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검찰은 영장기각 사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13일 KAI 박모 고정익개발사업 관리실장(상무)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이 같이 결정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이용일)는 검찰과 금융감독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자 부하 직원에게 최고경영자(CEO) 보고문건 등 분식회계와 관련된 핵심 증거를 파쇄토록 지시한 혐의(증거인멸 교사)로 지난 11일 박 실장의 영장을 청구했다.

강 판사는 이에 대해 검찰이 혐의 적용에서 법리를 오해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해야 한다”며 “이 사건에서 증거인멸 지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했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형법 155조 1항은 증거인멸죄에 대해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혹은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법원이 법리적으로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성립될 지 여부에 의문이 있어서 영장을 기각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법원 결정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불만을 나타냈다.

검찰 측은 “증거인멸죄는 타인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했을 때 성립되지만 증거인멸 교사죄는 인멸 대상인 증거가 자기가 처벌받을 형사사건에 대한 경우에도 성립한다”며 “박 실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증거인멸죄가 아니라 증거인멸 교사죄”라고 강조했다.

검찰 측은 이어 “영장기각 사유를 보면 박 실장에게 교사받은 실무 직원들도 분식회계로 처벌받을 수 있어 증거인멸 교사 혐의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 사건에서 인멸된 증거는 경영진과 회계담당자들의 분식회계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실장은 회계부서와 직접 관련이 없어 분식회계로 형사처벌될 가능성이 없는 개발부서 실무직원들에게 직무상 상하관계를 악용해 검찰제출 서류 중 경영진과 회계담당자들의 분식회계 혐의와 직결되는 중요 증거서류를 직접 골라내 세절하도록 교사했다. 이 때문에 박 실장의 증거인멸 교사죄가 성립한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 측은 “수사 단계에서 증거인멸 우려를 구속의 주된 사유로 규정하는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감안할 때 영장기각 사유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서울중앙지법에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활동 사건 및 KAI 방산비리 의혹 사건의 피의자 3명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하자 서울중앙지검은 당일 입장자료를 배포해 법원 결정을 공개 비판했다. “일반적인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대단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법도 바로 입장자료를 내 “도망이나 증거인멸 염려 등 구속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수사 필요성만을 앞세워 영장이 발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며 맞받아쳤다.

박 실장은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과 관련한 개발부서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KAI의 고정익항공기 사업부서에는 T-50 고등훈련기 등 대형 무기체계 개발사업이 있다.

검찰은 그간 KAI가 항공기 등을 개발해 군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원가 항목인 개발비를 부풀려 수백억원대의 이득을 챙기고 해외수출 프로젝트의 수익을 선반영하는 등 대규모 분식회계를 벌였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쳐왔다. 검찰은 이를 위해 지난 7월부터 KAI 본사와 서울사무소, 협력업체들에 대한 3번의 대규모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조사를 이어왔다.

검찰은 이와 관련, 100억원대에 달하는 항공기 원가 부풀리기 혐의를 받는 공모 구매본부장을 지난 8일 구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검찰은 독자적으로 KAI 회계감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과 공조해 회계부정 의혹 수사를 진행해 관련 혐의에 접근하고 있지만 핵심 관련자인 박 실장의 신병확보에 실패했다.

검찰이 주요 국면마다 영장이 번번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좀처럼 수사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KAI에서 분식회계 관련 내용을 하 전 사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도 포착했지만 이번 영장기각으로 하 전 사장 소환에 더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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