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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법, WTO 협정 위반 소지"

김은비 기자I 2024.05.13 05:00: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①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쌀값 하락 땐 정부의 의무 매입
WTO 보조금 한도 훌쩍 넘어
형평성 문제 및 과잉 생산 우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야당이 주도해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국제통상의 관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법안이다. 쌀 매입가격이 시장가격이 아닌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되어 있고, 사실상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있는 농산물가격안정법 개정안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가격지지정책으로 볼 수 있고,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의 보조금 위반의 소지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공비축미 매입가격과 국제가격과의 차이를 고려하면 연간 쌀 생산량을 350만톤으로 잡더라도 WTO가 정한 보조금 지급 기준을 약 3배 가량 뛰어넘는다. 더욱이 다른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과 같이 성급하게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 원장(사진=본인제공)
지난해 폐기됐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일부 수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조만간 본회의에서 표결될 전망이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락 우려 시 정부가 쌀의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는 대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쌀의 매입·판매를 포함한 폭등 폭락의 기준 등은 이해관계자가 포함된‘양곡수급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 역시 사실상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을 의미하고 있어 쌀의 과잉생산을 부추길 우려가 여전하다. 양곡수급위원회에서 기준가격을 정해, 초과 생산량 매입을 심의·결정하면 정부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쌀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생산량의 합리적인 감산이 필요한데 오히려 쌀 생산을 조장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쌀의 매입과 판매는 물론 기준가격의 결정 등 주요 수급 사항을 심의할 양곡수급관리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할지도 의문이다. 정부와 생산자 및 소비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합리적 결정을 하기보다 기준가격 등을 놓고 참여자 간 갈등만 초래했던 것이 과거 양곡유통위원회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른 농산물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소지도 다분하다. 과일과 채소, 축산 농가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이다. 특히 작년부터 쌀의 감산을 유도하고 낮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콩과 밀 등의 품목에 새롭게 도입한 전략작물직불제와도 상충된다. 논에 콩과 밀 등의 재배를 자려하면서 다시 쌀의 증산을 유인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쌀에 대한 과도한 재정지원이 자칫 청년농과 스마트팜 육성 등 미래 농업투자 확대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때문에 과연 쌀만을 위한 막대한 재정투입을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진정 우리 농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것인지 근본적 의문도 제기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식량안보의 핵심인 쌀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하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쌀 증산 유인과 타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 WTO 위반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더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각도에서 심층 검토를 통한 다음 전문가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격의 없는 토론을 거쳐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식량안보의 핵심인 쌀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활용하면 곤란하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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