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짐싸는 은행원]②"결국 또 치킨집"…금융권 구조조정 경착륙 주의보

김정남 기자I 2019.02.05 06:00:00

구조조정 경착륙, 금융권 예외 아냐
치킨집·빵집 '서비스업종' 비중 높아
시중은행 전직 지원, 생색내기 그쳐
"40대 이상 사전교육 연계성 높여야"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 경제를 뒤덮고 있는 ‘구조조정’ 키워드는 금융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민간 금융사를 중심을 짐을 싸는 퇴직자만 매년 수천명에 달하고 있다. 오히려 다른 업계보다 구조조정 강도는 더 세다.

어떤 구조조정이든 다 똑같다. 최대한 연착륙하는 방안을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게 포인트다. 요즘 제조업도 그렇고, 자영업도 그렇다. 다만 금융권에서 퇴직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활용 방안은 체계화된 게 전무하다. 수십년간 쌓인 금융 노하우가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 내에서 계속 버티려는 중장년과 치고 올라오는 청년간 세대 갈등만 커지고, 금융사 체질 개선은 더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 경착륙, 금융권도 예외 아냐

은행연합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낸 마상천(62)씨는 스스로를 ‘프로 N잡러’로 부른다.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직을 비롯한 여러 직업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이름 붙인 직업이다. 현직 때 임원까지 지냈기 때문에 퇴직 이후도 평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씨는 “2013년 10월 명예퇴직을 했을 때만 해도 금융권에서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금융계에서 은행과 정부기관, 언론까지 아우르며 30여년을 일한만큼 경험과 능력에서 자신이 있었다”며 “그런데 여러 이력서를 돌려봐도 정규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이러다 정말 백수가 되나 겁이 났다”고 했다. 마씨처럼 작더라도 여러 일을 하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라면 퇴직 이후도 사회에 기여하며 살 수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김옥경 노사발전재단 금융특화센터 컨설턴트는 “금융권 퇴직자는 강사 혹은 상담사를 특히 선호하고 법정관리사와 공인중개사도 많이 얘기한다”면서도 “현직에 있을 때 혜택을 받았으니 금융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지만, 실제 재취업률은 다른 업종들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인사들의 ‘눈높이’를 채워줄 만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탓이다.

이데일리가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걸쳐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명예퇴직자를 계산해보니, 2088명으로 파악됐다. 국민은행이 615명으로 가장 많았고, NH농협은행도 597명에 달했다. 증권사 등 다른 업권을 더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해마다 수천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방황만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국민은행 파업 때 봤듯 금융권의 더 큰 도전은 디지털화”라며 “퇴직자가 훨씬 더 많아지는 구조조정의 경착륙이 이른 시기에 올 수 있다”고 했다. 100여개의 거점 영업점만 있어도 되는 시대가 머지 않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영업점은 1000개 안팎에 달한다.

현재 금융권 인사들의 재취업은 관련 통계가 없다. 다만 노사발전재단 금융특화센터의 통계를 보면 유추는 가능하다. 센터가 출범 초기인 2015~2016년 재취업 현황을 자체 집계해보니, 60대 이상 연령층은 기타 서비스 업종에서 일자리를 가장 많이(30명) 찾았다. △경비·청소 관련직 △미용·숙박·여행·오락·스포츠 관련직 △운전·운송 관련직 △음식서비스 관련직 등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60세 이상~70세 미만의 서비스업 창업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11.44%를 기록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7년 말 기준 대표자의 연령이 60세 이상인 사업체는 87만5299개로 1년새 5만1998개 증가했다. 1년간 늘어난 사업체 수의 약 74%다. 하지만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치킨집 창업도 5억원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며 “섣불리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했다는 사례가 다반사”라고 했다. 퇴직을 앞둔 한 금융인은 “요즘은 가만히 있는 게 돈을 버는 것이라는 말이 많다”고 토로했다.

◇정부·금융사 전직 지원, 생색내기 그쳐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권은 전직 지원에 손을 놓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IBK기업은행 등과 함께 문을 연 ‘금융전문인력 채용관’은 발길이 끊겨 문을 닫은 상태다. 기업은행의 한 담당자는 “2012년 말 제도 시행 이후 실질적으로 운영이 잘 안 됐다”며 “지금은 새로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데, 언제 다시 시작할 지는 예정돼 있지 않다”고 했다. 지난 6년여간 기업에 실제 매칭한 집계도 없다. 6년여 전 함께 사업에 참여했던 은행연합회의 인사팀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은행만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보여주기식(式) 전시 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다.

주요 시중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 정도가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5년 단위로 끊어 재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착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경력개발컨설팅센터를 둔 곳도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은행들은 사실상 재직자를 위한 사전교육이 미미한 실정이다.

김영대 KB국민은행 경력컨설팅센터장은 “전직 지원을 위한 사전교육은 일단 공공기관에서 확대하고, 그에 못지않게 민간에서도 추진해야 한다”며 “예컨대 45세 이후로, 일정 연령대 이후 연속적인 전직 교육으로 연계성을 높이는 방안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퇴직 금융인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적지 않다. 임희정 노사발전재단 금융특화센터 소장은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게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하는가’인데, 자격증만 딴다고 재취업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며 “퇴직 전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미리 가져야 한다”고 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