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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지열발전 고압의 물이 촉발…추가여진 없다곤 답 못해”

박일경 기자I 2019.03.20 17:00:38

1년여 정밀조사…“임계응력 상태서 지진 촉발”
굴착 때 이수 누출…유체 주입하자 높은 압력
공극압에 단층면 미소지진→본진진앙 영향 줘
“향후 위험관리 중요…장기 안정성 모니터링”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분석 연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017년 포항지진과 관련된 98곳을 분석한 결과 지열발전과 지진 위치가 시간적·공간적으로 거의 일치한다”고 결론 냈다. (사진=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지열발전을 위해 주입한 고압의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활성화해 포항지진 본진을 촉발했다.”

지난 2017년 11월 규모 5.4의 포항지진 원인이 인근 지열발전소 때문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 결론이 나왔다. 포항지진은 지난 2016년 9월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에 이어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서는 역대 두번째로 컸던 지진으로 기록돼 있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의 해외조사연구단장을 맡은 셰민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분석 연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포항지진 발생지 주변의 지열정(PX-1, PX-2) 두 곳에서 이뤄진 활동과 그 영향 등을 자체 분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조사연구단 총괄책임자로 이날 회견에 동석한 이강근 서울대 교수(대한지질학회 학회장)도 “지열발전 실증연구 수행 중 지열정 굴착과 두 지열정을 이용한 수리자극이 시행됐고 굴착 시 발생한 이수(泥水) 누출과 PX-2를 통해 높은 압력으로 주입한 물에 의해 확산된 공극압이 포항지진 단층면 상에 남서 방향으로 깊어지는 심도의 미소지진들을 순차적으로 유발시켰다”고 설명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포항시민단체와 시의회 등이 각각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결과적으로 그 영향이 본진의 진원 위치에 도달돼 거의 임계응력 상태에 있었던 단층에서 포항지진이 촉발됐다”고 거듭 확인했다. 정부조사연구단은 국내조사단과 해외조사위원회로 구성되는데 이날 발표 결과는 두 그룹의 독립적인 조사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정부조사연구단의 국내조사단과 해외조사위는 “지난 2009년 1월1일부터 2017년 11월 본진까지 포항지역과 그 주변에서 발생한 것으로 검출된 520개 지진 중에서 심부지열발전(EGS) 실증연구부지에서 진앙거리가 5㎞ 이상인 것, 진앙거리가 5㎞ 이내이지만 진원깊이가 10㎞ 보다 깊은 것을 제외한 109개의 지진을 선별해 이 중 관측 자료가 부족한 11개 지진을 제외한 98개 지진을 대상으로 정밀 지진위치 분석을 수행한 결과 지열발전과 지진 위치가 시간적·공간적으로 거의 일치한다”며 동일한 결론을 도출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포항지진, 자연지진 아니다”…미소지진에 촉발돼

연구단에 따르면 지열발전소에 지열정을 굴착할 때 이수가 누출됐고 유체(물)를 주입하자 압력이 발생해 포항지진 단층면 상에서 규모 2.0 미만의 미소지진을 일으켰다. 이 미소지진의 여파로 시간이 지나며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했다. 이 교수는 “유발(induced)지진은 자극을 받은 범위 내에서, 촉발(triggered)지진은 자극을 받은 범위 너머에서 각각 발생한 지진이라는 의미에서 (포항지진에 대해) 촉발지진이라는 용어를 썼다”며 “자연지진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지열발전은 지하 4㎞ 이상 깊이에 구멍을 두 개 뚫어 한쪽에 고압의 물을 주입하고 지열로 데운 후 다른 구멍에서 수증기를 빼내 발전기 터빈을 돌린다. 이에 2년 전 포항지진이 발발한 직후 과학계에서는 진앙(震央)이 지열발전소와 수백m 떨어졌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지열발전소가 지진과 연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발전소에서 지하에 주입한 물이 단층을 움직이게 했다는 논리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와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 국내 연구진은 이런 연구 결과를 작년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물을 4번 주입해 이 정도 지진이 나긴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논란이 계속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포항지진과 지열발전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을 구성, 지난해 3월부터 약 1년간 정밀조사를 진행해 왔다. 조사연구단은 국내 연구진 15명과 해외 연구진 5명, 자문단 2명 등 총 19명으로 구성돼 있다.

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모습. 이날 대한지질학회는 지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 추가 여진 발생 가능성…“‘없다’고 답할 수는 없다”

이 교수는 포항시민의 미래가 달려있기도 한 추가적인 여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있다, 없다로 분명하게 나눠서 답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PX-1과 PX-2 지열정의 수위 차이가 지난달 말 현재 600m 이상이고 수위 상승 속도도 2배 정도 차이가 나며 수화학 특성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두 지열정의 수위 차이에 의한 비정상적인 수리경사는 수리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향후 미소지진과 안정성에 관한 장기적인 모니터링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질학회는 포항지진 관련 논문이나 토론회 형태로 정책을 제안할 계획이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지진으로 무너진 포항시 북구의 건물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다만 지난 2016년 경주지진과 포항지진 간 밀접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교수는 “두 지진이 서로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멀리서 발생했다”면서 “그래서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주지진은 자연지진이고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이 촉발했다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중단된 지열발전 처리 문제에 있어서는 “정부조사연구단은 지진의 원인을 조사했다”며 “(발전소) 부지 처리는 우리 일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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