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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전에는 한국이 국가부도의 상황에 직면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코 앞에 닥친 위기의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지요.”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미셸 캉드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굳은 표정으로 구제금융 합의문에 서명했던 날이 1997년 12월3일이다. 이 전 원장은 당시 산업연구원 부원장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2분과위원장을 겸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998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으로 취임해 국회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이 전 원장은 “당시만 해도 개별 기업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있다고 봤지만 국가 전체가 그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관하지는 않았다”고 돌이켰다.
그는 “블랙스완(Black Swan·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위기가 실제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라며 “책상에서 통계만 만지는 사람들은 절대로 위기를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원장은 “국제금융시장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당시만 해도 너무 없었다”며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고 있는지 정보에 밝아야 그나마 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금융시장과 소통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으고 분석해 이를 거시경제 모형과 함께 봐야 정확한 시장 예측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는 “2008년을 돌아보면 미국에서조차 위기가 나타나지 않았나”라며 “현재 한국은 (단기적으로 유동성이 고갈되는 식의) 위기 징후는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전 원장은 아울러 “지금의 위기는 실물경제 전반의 구조적인 활력이 없어지는 위기”라며 “(20여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더 회복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력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점차 저하되고 있는데 대한 우려다.
이 전 원장은 “과거 주력업종의 구조조정은 기업 경영이 방만한데 따른 과잉 부채 문제가 주된 것이었다면, 지금은 여기에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변수까지 추가됐다”며 “각 업종별로 초격차(超格差)를 추구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초격차를 유지하기 힘든 분야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한국이 더 앞서갈 수 있는 분야에 특화해 핵심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원장은…
△1947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조지워싱턴대 경제학박사 △재무부(1974년) △한국산업조직학회 부회장 △산업연구원 부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4대·6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국제무역연구원장(2대) △통상조약 국내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