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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푸른 물감을 머리부터 뺨까지 흘린 소녀가 무심하게 나를 바라본다. 감정이 뒤엉킨 얼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지만 쉽게 털어놓진 않을 듯하다. 이 상황은 작가 강강훈(40)의 붓끝에서 만들어졌다.
작가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인물화를 그린다. 머리카락 한 올, 눈 안에 슬쩍 비친 물기까지 잡아낼 만큼 세밀하다. 마치 한 컷 사진처럼 뽑아내지만 작가의 사실주의는 단순치 않다. 그저 재현이 아닌 감정선을 따라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서려는 게 목적이라니.
‘꽃 피울 시간’(Time to Bloom·2019)은 300호 대형화면에 어린 소녀를 클로즈업한 작품. 간간이 모델로 삼던 작가의 딸을 본격 등장시킨 연작 중 한 점이며, 3년 전부터 시도해왔다는 ‘블루물감 시리즈’ 중 한 점이기도 하다.
얼굴에 실제 물감을 뿌리고 수천 장 사진촬영을 한 뒤 그중 일부를 골라 다시 화면에 옮겨내는 식. 직접 조색한 블루는 실현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담아낸 거란다. 이 단순한 실험이 사실주의란 강박에서 자유를 안겨줬다니, 뻔한 예술이란 건 없다.
8월 25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 조현화랑서 여는 ‘강강훈 개인전’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오일. 290.9×218.2㎝. 작가 소장. 조현화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