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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약 연명 중소제약사, 약가인하·공동생동 폐지 앞두고 속속 백기

류성 기자I 2019.04.10 19:52:52

복제약 1,2개로 땅집고 헤엄치듯 사업하던 시대 지나
정부정책 변화로 중소제약사 미래 불확실성 높아져
자본 및 신약개발 역량 부족 제약사,사업지속 힘들어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류성 기자] “땅집고 헤엄치듯 사업하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중소제약사들이 자신들의 설땅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지금의 제약산업을 빗대며 한탄하는 말이다. 중소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대한 고민없이도 똘똘한 복제약 1~2개 만으로도 충분한 이윤을 창출하며 사업을 편안하게 지속할수 있었던 ‘호시절’이 빠르게 저물어가고 있다.

제대로 된 신약 파이프라인을 갖추지 못하고 자금여력마저 열세인 중소 제약사들에게 미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경영환경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중소 제약사들의 매물이 쌓여가는 배경이다.

“정부는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을 통해 대형 제약사 중심으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경쟁력이 부족한 중소 제약사들에게 미래는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늦기 전에 회사를 팔려고 한다.”

해초류에서 추출한 물질로 성인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중소 바이오업체를 경영하는 박모 대표는 얼마전 회사를 매도하겠다고 시장에 내놓았다. 그의 회사는 해초류에서 추출한 성인병 치료제로 특허까지 취득, 업계에서 나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매출 30억원에 이익도 2억원 가량을 내면서 사업도 정상궤도에 진입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올해로 창업 10년째를 맞은 그가 회사매각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앞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은 자금력과 신약개발 역량이 탄탄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250억원에 회사를 팔겠다는 박대표는 메이저 제약사에 회사 경영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개발을 진행중인 치료제가 상품화까지 이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왕이면 자금력이 든든한 메이저 제약사에게 회사를 넘겨 현재 2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고용승계도 원활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들어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중소 규모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자본력이 열악하고 신약개발 역량이 부족한 중소규모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매물의 주축을 이룬다.

국내 최다 M&A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M&A거래소(회장 이창헌)에도 최근들어 제약·바이오 업계로부터 나오는 매도·매수 물량이 하루게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서만 회사를 팔거나 사겠다고 한국M&A거래소에 의뢰한 제약·바이오 업체만 17개사에 달한다. 이 회사는 M&A물량을 에너지, IT,자동차, 화학, 화장품, 의류 등 20여가지 산업군으로 분류,관리하는데 제약·바이오 분야의 M&A물량 증가율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실제 4월 현재 이 회사가 확보하고 있는 제약·바이오 분야 M&A 물량은 16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나 늘었다.현재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매도와 매물 기업건수는 3500여건으로 이 가운데 제약·바이오 물건은 전체의 5% 가량을 차지한다.

이창헌 회장은 “ 제약·바이오 기업 물건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연말이면 7~8%까지 육박할 것”이라며 “이 추세라면 내년에는 그 비중이 전체의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중소 제약사들의 매물이 쌓이고 있는 배경에는 정부의 과감한 제약산업 정책이 있다. 정부는 난립하는 중소제약사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신약경쟁력이 있는 제약사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한다는 기조아래 과감한 정책개편을 속속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복제약 약가인하 정책과 공동생동 폐지는 신약 개발역량이 부족한 중소제약사들에게는 회사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파괴력이 있다는 것이 중소제약업계의 설명이다.

복지부는 지난달 복제약이 현행 약가를 받으려면 자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실시하고 등록된 원료의약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복제약 약가인하 정책을 발표했다.

두 조건중 1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오리지널약가 대비 45.52%, 2가지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면 38.69%까지 복제약 가격이 크게 낮춰진다. 복제약이 두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현재처럼 오리지널 약가대비 53.55%의 가격이 책정된다.

요컨대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복제약 가격은 지금보다 27%, 한가지를 충족못하면 15% 가량 각각 깎이는 셈이다. 올하반기부터 신규로 등재하는 복제약에 대해 개편된 약가제도가 적용된다. 기존 복제약에 대해서는 유예기간 3년을 뒀다.

여기에 복제약 개발을 자체적으로 하지 않고 다른 제약사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제약업계의 기존 관행이던 공동생동 제도를 3년내 완전 폐지하겠다는 개편정책을 내놓았다. 자체 생동을 하려면 1개 복제약을 개발하는데 들어가는 연구비만 보통 2억~3억원 가량이어서 중소제약사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체 신약을 갖추지 못한 중소제약사들은 이번 정책개편으로 기존 복제약 가격이 크게 낮아지면서 사업이 적자구조로 돌아서는 경우가 상당할 것이라는 게 제약업계의 전망이다.

한 중소제약사 대표는 “대부분 중소제약사들의 주요 매출원이 복제약인데 정부가 제시한 한가지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가격이 지금보다 최소 15% 이상 깎이게 된다”며 “영업이익률이 두자리를 기록하는 중소제약사들이 거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가격 인하폭이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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