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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는 다르다…‘총수 부재’ 삼성이 직면한 네 가지 위기

피용익 기자I 2021.01.19 16:38:56

①시스템 반도체 1위 목표 등 신사업 전략 차질
②대규모 투자·채용 목표 세우기 어려워
③글로벌 M&A 시장서 기회 선점 놓쳐
④이재용 부회장의 ‘동행’ 비전 확대 불가능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 수감됨에 따라 삼성의 미래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선언한 시스템 반도체 1위 목표 달성이 불확실해진 것은 물론, 이 부회장이 미래 신사업으로 선정한 차세대 이동통신(5G·6G), 인공지능(AI), 바이오, 자동차 전장 부품 분야에서도 공격적인 투자와 채용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기회를 노려 온 대형 인수합병(M&A) 작업도 ‘올 스톱’이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이 강조하는 ‘동행’ 비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구속 직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지만, 최고경영자(CEO) 중심의 일상적인 경영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은 당분간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총수가 없어도 회사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기업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이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생산력 증대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달려가 ASML 경영진을 만난 것과 같은 일은 친밀한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총수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CEO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총수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 사업 답보 상태 빠질 수도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018년 2월 석방 직후 5G, AI, 바이오, 전장 부품 등 4대 신사업을 선정하고,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올라서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삼성은 그동안 이같은 목표에 따라 투자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의 미래 비전 달성이 불투명해졌다.

채용도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이 2018년 약속했던 ‘3년간 4만명’ 같은 공격적인 채용 목표는 CEO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사업 분야 M&A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이 2016년 하만 인수 후 그렇다할 M&A에 나서지 않은 것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무관치 않다고 업계는 해석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M&A가 활발해진 가운데 기회를 엿보고 있던 삼성은 총수 부재로 인해 답보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 관계자는 “수감 중 하루 10분 면회로 주요 사안을 결정하긴 어렵다. 4년 전에도 이재용 부회장이 옥중 경영을 했지만 구속 전 인수 결정을 내린 하만 후속 절차나 이미 투자 계획이 있던 공장 증설 등에 대한 의사 결정만 가능했다”며 “새로운 대규모 투자나 M&A 등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의사결정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신사업은 범국가적인 미래성장동력 육성과도 맞물려 있고, 삼성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하는 기업”이라며 “삼성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 부회장이 계속해서 확대해온 ‘동행’ 비전 역시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평소 삼성의 노하우를 국내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들과 나눠 국가 산업 생태계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이를 실천해 왔다.

과거와는 다른 총수 부재 위기감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 구속됐던 2017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삼성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은 오히려 개선됐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가 경영에 심각한 차질을 불러오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러나 당시 실적 호조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 사이클’ 덕분에 가능했다. 올해도 반도체 호황이 예상되고 있지만,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전쟁 등 글로벌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반도체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다.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사상 최고 투자를 예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탈(脫) 인텔’ 선언을 한 데 이어 아마존과 구글은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투자는 타이밍인데 옥중에서 시의적절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올해와 내년은 그동안 했던 투자로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앞으로 3~5년 후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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