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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절충점' 찾은 文정부, 묘수일까 패착일까

이준기 기자I 2018.01.09 17:40:27

합의 실체 인정하되, 없는 셈 치겠다는 '투 트랙' 전략
일본 '반발', 피해자 할머니들 '실망'..국민 정서 '주목'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기에 앞서 굳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정부는 9일 2015년 맺은 한일 양국 간 이른바 ‘12·28 위안부 합의’를 ‘국가 간 공식합의’로 보고, 일본 측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 합의가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향후 일본 측에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계속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일본 측이 피해자 지원을 위해 화해·치유 재단에 출연한 10억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되, 향후 기금 처리는 일본 측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장관이 발표한 ‘위안부 합의 처리방향’의 골자다.

한 마디로 합의의 실체는 인정하되, 없는 셈 치겠다는 얘기다. 재협상이나 파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피해 가면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규정, 합의 효력을 원천 차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해야 하는 ‘현실’과 피해자의 의중 및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명분’을 모두 고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의 판단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모습으로 비치면서 일본 측과 피해자 측 모두에 비판의 여지를 줄 수밖에 없는 만큼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19일 도쿄에 있는 총리관저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의 예방을 받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일본은 거부하는 文대통령의 ‘투트랙 외교’?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외교는 위안부 합의 문제와 안보·경제 협력 등은 분리하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으로 요약됐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첫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민간 영역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결하는 건 한계가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그러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한·일 간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었다.

지난달에도 문 대통령은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면서도 “역사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했었다.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이 이번 위안부 합의 처리방향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후 방일을 추진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일본이 문 대통령의 기대처럼 ‘투트랙’ 외교에 응해줄지는 여부다. 당장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우리 정부의 발표와 관련,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시 항의할 방침을 밝히는 등 일본 정부는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한·일 관계도 없다”는 입장에 가깝다. 가뜩이나 일본 측은 작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가 국빈 만찬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초청한 데 이어 ‘독도새우’를 내놓은 데 대해 감정이 쌓여 있는 상태다. 일본의 대응 수위에 따라 위안부 합의 처리 문제가 향후 한일관계의 중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나 나오는 배경이다.

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집에서 이옥선 할머니(가운데)가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 발표를 시청한 후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들 “기만행위” 반발..野 “또 지지자용”

정부의 ‘절충안’은 국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지원단체를 달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재협상을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대해 “기만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지난 합의가 양국 간의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피해 할머니들에게 마치 ‘파기’나 ‘재협상’을 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강하게 준 데 대한 ‘실망감’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일본 정부로부터 이미 입금된 10억엔을 우리 정부가 충당키로 하면서 마치 위안부 문제를 우리 정부가 떠안는 듯한 뉘앙스를 준 것도 한몫했다.

당장 야권은 이도 저도 아닌 ‘실체 없는 입장’이라며 정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자유한국당은 전희경 대변인의 구두논평을 통해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해결했다는 것인지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다. 정부가 내놓은 입장을 보면 입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입장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대부분이 국내용, 그것도 국내에 있는 지지자용”이라며 “지지자에 맞춰 급조된 정책 등을 추진하다 보니 상대방이 있는 외교 문제 등에 늘 패착을 보여왔다”고도 했다. 국민의당은 논평을 내어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 재협상 공약 파기에 대한 사과부터 하라”(이행자 대변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정당도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국민에게 했던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슴에 두 번째 못을 박았다”고 동조했다.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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