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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점에 돈 줘야? 법인택시는…" 정부 지원금 '형평성' 논란

정병묵 기자I 2020.09.15 17:47:25

"술 파는 노래방·단란에 지급, 유흥주점 미지급 넌센스"
"강남 '대형룸' 소수…생계영 영세 유흥주점이 대부분"
법인택시 기사들 "개인택시보다 우리가 훨씬 열악해"
"하루 사납금 채우기도 힘들어…법인기사도 지원 달라"

[이데일리 정병묵 이용성 기자] “차라리 노래연습장, 단란주점에 지원금을 주지 말든지 유흥주점만 안 주는 건 명백한 차별 아닙니까.”

“개인택시 기사보다 법인택시 기사가 더 열악한데 회사 소속이라고 안 줄 수가 있나요?”

정부가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약 3조원 규모로 소상공인들에게 ‘새희망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지원 대상에서 빠진 업종에서 분노를 표하고 있다. 특히 유흥주점 업주와 법인택시 기사들은 이번 지원 대상인 단란주점, 개인택시와 각각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우리들”이라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유흥주점 문이 집합금지명령으로 굳게 닫혀 있다.(사진=정병묵 기자)
유흥주점 “85% 이상이 영세업소…왜 우리만 소외”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연매출 4억원 이하 소상공인 중 100만원 지급 대상으로 소규모 부동산, 개인택시, 온라인쇼핑몰(매출 감소 기준 충족 시) 등을 선정했다. 법인택시를 비롯해 복권판매업, 약국, 동물병원 등 수의업, 성인용품 판매점, 점집·무당·심령술집 등은 지급하지 않는다.

또한 집합금지업종은 매출 규모와 상관 없이 일괄 2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단란주점·감성주점·헌팅포차·노래연습장·실내 스탠딩 공연장·실내집단운동·뷔페·PC방·방문판매가 지원금을 받는다. 단 유흥주점, 콜라텍 등 무도장 운영업은 제외됐다.

특히 ‘룸살롱’ 등이 포함된 유흥주점은 이번 논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유흥주점에 대한 국민 인식이 썩 좋지 않은데다가 ‘평소 돈 많이 버는데 뭘 지원해 주냐’는 여론도 많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제외 업종에 대해 “‘사회 통념상’ 곤란한 곳”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유흥주점 업주들은 자신들 ‘사치 업종’이라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며 대부분 생계형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60대 A모씨는 “30~40년 전 규모를 크게 하던 곳들이 많아 ‘사치성 업소’로 분류됐지만 지금 85% 이상은 대부분 생계형 영세업소로 전락했다”며 “강남 등에 있는 대형 룸살롱은 어차피 연매출 4억원 이상이라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데 우리 같은 영세 업종들이 강남 룸살롱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달 말 경기도 안양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60대 A씨, 50대 B씨 자매는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업소 방문객의 기척에 동생 B씨는 의식을 회복했고 언니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이들은 생활고로 사채빚에 시달리던 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집합제한조치가 한 달 간 이어지자 신변을 비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또 “법적으로 노래연습장은 술을 팔면 안 되고, 단란주점은 접대부를 고용하면 안 되지만, 다 술 팔고 접대부 쓰지 않느냐. 세 업종이 사실상 거의 비슷한 형태”라며 “요새는 ‘보도방’을 통한 노래연습장·단란주점 퇴폐 영업이 제일 심한데 법을 지키지 않는 그쪽에 지원금을 차라리 주지 않으면 속 편하겠다”고 부연했다.

유흥주점 업주들은 자신들의 ‘조세 기여도’와 열악한 상황을 정부가 알아 주길 바라고 있다. 오호석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유흥주점은 코로나19 이후 반년간 가장 오래 쉬었고 식품접객업종 가장 많은 세금, 매출의 약 45%를 내고 있다”며 “일반 업종 대비 재산세 중과가 16배나 되는데다 감면도 전혀 받지 못해 업주 상당수가 신용분량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법인택시 “개인택시보다 열악한 게 우린데 왜…”

서울 마포구 난지천 공원 주차장에 택시들이 미터기 교체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법인택시 기사들도 이번 조치에 뿔이 나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회사에 속했기 때문에 엄밀히 자영업 소상공인은 아니지만, 지원금을 받는 개인택시 기사들보다 자신들이 더 열악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택시기사 김모(64)씨는 “개인택시 기사는 웬만하면 자기 집 다 있고, 정년퇴직하고 할 거 없어서 하는 사람이 많은데 법인택시는 정말 생계형이다”라며 “한 달 벌어 한 달 먹으면서 저축같은 것은 꿈도 안 꾸는데 애먼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나”라고 반문했다.

법인 기사들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거치면서 ‘사납금’을 채워본 적이 없다면서 정부가 회사에 지원금을 주고 그 혜택이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모(61)씨는 “9월 들어 오후조(오후 3시~새벽3시)를 뛰고 있는데 17만5000원가량 하는 사납금을 한 번도 채운 적이 없다. 사납금을 못 채워 아예 일을 하지 않으려는 기사가 20~30%정도 된다”며 “봉급 한 달에 세금 다 떼고 160만원 정도 손에 쥔다고 보면 되는데 사납금 못 채우면 160만원에서 또 까인다. 요새는 법인 기사들 대부분 100만원대 초반 정도 벌 것”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치권에서도 두 업종에 지원금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유흥주점과 단란주점의 형평성, 개인택시와 법인택시의 형평성 문제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재정 당국에 확인해 보니 국민 정서에 반한 측면이 있고 또 역대 지원 사례가 없다는 논리였다”며 “지금 전국 광역단체장들 협의회에서도 이분들이 세금도 많이 내고 또 임대료도 다른 데 비해서 비싸게 내는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동의하고 여야가 합의한다면 검토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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