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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때 사죄해야"…위안부 日 상대 소송, 마지막 구제수단 될까

이소현 기자I 2021.01.05 18:12:51

5일 '일본군 위안부 소송 의미와 과제' 토론회
日 정부 '주권 면제' 이유로 소송 각하 주장
"피해자 개인 인권이 국가 주권보다 더 중요"
"구제책 마련에 한국 정부도 적극 나서야"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을 앞두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년 ‘회계 부정’ 의혹으로 위기의 한 해를 보낸 정의연은 앞으로 이번 판결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마지막 구제 수단이자 인권운동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비대면으로 열린‘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의미와 과제’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이재정 의원실)
日 정부 상대 첫 선고에 주목…30년 위안부 운동 역사 달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의미와 과제’ 긴급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시민이 주도하고 일궈온 초국적 여성인권 운동의 역사를 대한민국 법원이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가 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며 “탈식민의 역사 과정에서 사법부가 미래에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지 깊게 숙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과 유족들은 지난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8일과 13일 각각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번 법적 판단은 30여년 위안부 운동 역사에서 관련 문제 해결의 중요한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위안부 인권운동의 중심축인 정의연과 전 정의연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회계 부정 등 의혹 때문에 위안부 인권운동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이 이사장은 “가해자(일본)의 부인과 역사 왜곡이 이어지는 가운데 법적 책임 규명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인권보호를 위해 중요하다”며 “가해자의 사실 인정과 사죄, 진상규명, 법적 배상은 전쟁범죄뿐 아니라 일반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의연과 한 차례 각을 세웠던 위안부 피해자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도 이날 참석해 “현명하신 재판장님, 우리는 죄가 없다”며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을 때에 일본이 진정한 마음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18일 일본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6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와 “30년 동안 위안부로 불려 왔다”며 “지금까지 수차례 나라 대 나라로 해결해 줄거라고 믿었지만,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고 우리 한국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2020년 11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해 증언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스1)
‘주권면제’ 관건…“피해자 인권이 국가 주권보다 더 중요”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의 핵심 쟁점은 ‘주권 면제’ 여부에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은 2019년 5월 한국 정부에 국제법상 국가(정부)는 다른 나라의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 면제의 원칙을 내세워 소송 참여를 거부한 채 소송을 각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원고 측은 국제인권법적 시각에서 이번 소송에서 주권 면제가 불멸의 법리가 아니며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까지 적용될 수 없다고 맞섰다.

정의연은 “이번 판결은 공권력의 인권침해 과정에서 무시됐던 ‘피해자 인권’이 ‘국가의 주권’ 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리를 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백범석 경희대 교수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는 당연하고 최소한 피해자가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국내 법원의 판결이지만 결과에 따라 국제사회가 추구해 나가는 국제인권규범 형성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의미와 과제’ 긴급토론회가 비대면으로 열렸다.(사진=이재정 의원실)
이번 판결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일본을 비롯해 미국 법원에서 모두 가로막혀 기댈 곳이 우리나라 법정뿐이기 때문이다. 일본 위안부 소송 변호단인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위안부는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 위반이고 위반한 규범이 강행규범”이라며 “국내 재판이 피해자에게는 마지막 구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1991~1993년까지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4건의 소송에 대해 일본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2000년에 한국·중국·대만·필리핀 출신 피해자 15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미국 법원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재작년 대법원의 강제 동원 배상 판결에 이어 또 다시 한·일 관계가 경색될 가능성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우리 법원의 원고 승소 판결이 한·일관계를 파탄시키지 않는다”며 “대법원 강제 동원 판결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일본 정부가 판결을 따르면 관계가 파탄 날 이유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일본 재판소에 소송이 제기됐을 때 일본 정부는 ‘재판소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며 “일본 재판소의 판결은 따르지만, 한국 법원의 판결은 따르지 않는다면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라라고 입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종합·장기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과거사 위원회와 같은 명칭으로 기구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피해자 구제대책에서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의미와 과제 긴급토론회 포스터(사진=이재정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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