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표준감사시간 확정안에 기업은 거부하고 당국은 수습…진통 이어지나

이명철 기자I 2019.02.14 15:43:14

심의위 서면의결, 15표 중 9표 찬성…기업단체 4곳 불참
금융위·금감원도 난색 표하지만 제정 권한 한공회에 있어
상한제 적용, 과도한 감사보수 인상 제재 등 대책 '글쎄'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이광수 기자] 2만6000여개 외부감사 기업에 적용되는 표준감사시간이 확정됐다. 하지만 제정 과정에서 기업들은 사실상 최종안을 거부하면서 파행을 빚어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과도한 감사보수를 요구하는 회계법인에 제재를 가하기로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상장사들이 최종안 수용 거부의 입장을 나타내면서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 불참에 투표 거부까지…제정 과정 파행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전날 표준감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한 후 같은날 서면 의결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 14일 발표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면 의결에서는 15명의 심의위원 중 9명으로부터 찬성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단체(중소기업중앙회·코스닥협회·코넥스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 4곳은 아예 의결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와 금융감독원측 참석자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 ‘기권’ 처리됐다.

표준감사시간이 외감기업의 감사시간을 결정하는 제도인데 대상인 기업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명분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날 심의위에서는 지난 두차례 공청회와 기업 의견을 반영해 적용 대상그룹을 11개로 더 세분화하고 전년대비 감사시간이 최고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상승률 상한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기업측에서는 수정안 중 그룹별 표준감사시간 산정 모형이나 당기순손실 가산 비율 등 세부 내용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회의 내용을 추가로 반영해 오는 22일 심의위를 한번 더 열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당일 심의위원장인 박성동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이 서면을 통해 의결을 받아 추가 심의위 없이 최종안을 확정한 것이다.

기업단체 측에서는 그간 의견 수렴을 통해 제정안 방향성이 정해진 만큼 마지막 심의위에서 협의 후 최종안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갑작스러운 서면 의결 진행이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특히 13일 심의위에서는 정보이용자 자격으로 포함된 신용평가사 등 두 곳의 심의위원이 참석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위 구성 요건인 9명 이상이 자리해 결격 사유는 아니지만 회계정보의 소비자인 중요 구성원 의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셈이다.

◇ 과도한 감사보수 인상 방지 등 보완책 나와

기업들은 금융 당국이 표준감사시간 제정 과정을 수수방관하면서 기업 부담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외부감사인(공인회계사)의 이익단체인 한공회 주도로 표준감사시간을 제정하면서 업계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중재나 조정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도 난감한 상황에 처하긴 매한가지다. 외부감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표준감사시간의 제정 권한은 한공회가 갖고 있어 참견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들과는 여러 차례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면서도 “한공회가 표준감사시간을 제정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는데 여기에 금융위가 지시를 내리는 것도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며 설명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권 기업들의 감사비가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돼 금융위에 호소하면서 금융위 측에서도 (감사시간 급증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추천 인사가 다수인 한공회측의 의견이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심의위에 참석한 금감원측도 서면 의결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는 것은 절차상 무리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결국 해당 의견은 ‘기권’으로 처리돼 최종안 확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표준감사시간에 대한 기업 반발이 지속되자 금융위는 뒤늦게 수습안을 내놨다. 우선 이날까지였던 감사인 선임 시한을 내달 15일까지로 연장해 이해관계자간 원활하게 협의를 진행할 것을 당부했다. 회계법인이 구체적 근거 없이 과도하게 감사보수 인상을 요구할 경우 지정감사 제한 등의 제재도 내리기로 했다. 이 같은 부당 사례를 막기 위해 금감원은 이달 중 신고센터를 마련키로 했다.

금융당국의 수습에도 상장사 단체인 코스닥협회·코넥스협회·상장사협의회는 이날 공동 입장문을 내고 “한공회의 일방적인 확정 발표 수용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조속히 협의를 재개해 표준감사시간 상한제 상한률 완화와 산출모형 검증 등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표준감사시간 제정의 절차·내용상 하자에 대해 법적 조치 등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혀 갈등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