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계기준 바뀌는데…감독당국, 사법부 체계도 변화해야”

이명철 기자I 2019.04.10 17:12:02

감리위 출신의 제언 “원칙중심 회계기준 특성 감안”
“삼성바이오 재판, 회계전문가 의견 적극 활용 필요”

1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회계정보학회의 심포지움에서 송창영 법무법인 세한 변호사, 최종학 서울대 교수, 최연식 경희대 교수, 정도진 한국회계정보학회장(중앙대 교수), 김종현 한양대 교수, 이상열 한양대 교수, 지현미 계명대 교수(이상 사진 왼쪽부터)가 토론하고 있다.(사진=한국회계정보학회 제공)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회계 쟁점이 있는 재판 때는 회계 전문가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하거나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회계 자문을 받는 방안이 도입돼야 한다.”

이른바 ‘삼바 사태’가 촉발한 원칙중심 회계기준 논란에 대해 금융당국은 물론 사법부의 판단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제회계기준(IFRS) 환경에서 회계 처리가 각자 다를 수 있는 만큼 일률적인 징계나 처벌은 불합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금융위원회 감리위원 출신 회계사와 변호사들은 회계 감리와 재판 과정에서 회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감안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회계처리 제재보다 정책·제도 보완이 우선”

한국회계정보학회는 10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IFRS 시대 회계전문가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회계정보학회장인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삼성바이오 사태 당시 감리위원을 맡은 바 있다. 다른 시기 감리위원을 지냈던 송창영 법무법인세한 변호사와 지현미 계명대 교수, 최종학 서울대 교수 등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날 심포지움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바이오 사태로 불거진 IFRS 환경에서 감독당국과 사법부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발표자로 나선 김종현 한양대 교수는 “삼성바이오의 경우 회계법인의 감사를 거쳤고 외부 전문가 자문도 구했다고 했음에도 징계를 받았다”며 “IFRS로 회계 기준은 바뀌었는데 법규 체계는 변화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경제적 실질에 근거해 기업이 자율적 판단하도록 회계 기준이 변화했지만 이에 대한 감리는 여전히 예전 규정 중심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지현미 교수는 감독당국의 변화를 당부했다. 그는 “옛날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 때처럼 기업들이 감독당국만 바라보고 있게 한다면 회계 전문가들의 능력은 배양되지 않는다”며 “IFRS 시대에서 감독당국은 구체적인 회계처리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거시적 측면에서 정책이나 제도 보완을 통해 선순환을 촉진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회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감리위원 출신의 한 교수는 삼성바이오 감리 당시 감리위원회 의견이 증선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바이오 감리 당시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의와 토론을 통해 내린 결론이 증선위에서 뒤집어졌다”며 “회계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당국의 결정 과정에서)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회계전문가 배심원제, 인프라 강화 제언도

삼성바이오처럼 기업 재무제표의 이해관계자 간 의견 상충이 법적 다툼으로 번질 여지가 많은 만큼 사법부도 회계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상열 한양대 교수는 “회계 전문가의 영역을 이제는 사법부로도 넓혀야 할 때가 됐지만 회계 주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적정할지는 의문”이라며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 재판이라면 회계 전문가들을 포함한 배심원 같은 형태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보완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제언했다.

송창영 변호사는 사법부 판단 시 회계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내놨다. 그는 “고의성에 대한 판단과 형사 처벌과 관련해서는 판단의 영역이 넓어진 원칙중심 회계기준의 특성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며 “이해관계자는 제외하는 배심원보다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보다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 효율적”이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도 “사법부가 판단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공감한다”며 “삼성바이오를 예로 든다면 원칙중심 회계 처리와 의도와 목적에 대한 판단은 별개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의적인 분식회계 의도 등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있다면 처벌해야 하지만 회계 처리 자체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한편 원칙중심 회계기준에서 기업들은 물론 전문가들의 회계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종학 서울대 교수는 주기적 지정제 실시 등으로 감사의견 대란은 내년에 더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기업들은 회계 역량을 키우기 위해 인재를 갖춰야하지만 현재 시장에서 인력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회계사들은 대형 회계법인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회계 인프라를 키우는데 기여해야 하고 회계사 숫자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