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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편성부터 대북지원까지…못 하는게 없는 지역 '소통령'

박철근 기자I 2021.10.13 21:00:30

[제왕적 지자체장]②
개발부담금 징수도 지자체장 권한…국가사무 지속 이양
서울시 vs 서초구 재산세 환급 두고 갈등도

[이데일리 박철근·김경은 기자] 최근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평소 이재명 경기지사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른바 ‘보은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성에 대한 시비가 불거지면서 황씨 스스로 사퇴하며 일단락됐지만 지자체장의 무소불위 인사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자체장의 가장 강력한 권한은 인사권에서 출발한다. 행정안정부 관계자는 “지자체장을 ‘소통령’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지방의회 예산과 인사, 산하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방의회의 견제는 있지만 사실상 지자체장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인사·예산·인허가 등 권한 망라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자체장은 소속 직원을 지휘 감독하고 법령과 조례, 규칙에 따라 이들에 대한 임면, 교육훈련, 복무, 징계 등에 관한 사항을 일괄 처리할 수 있다. 지자체장을 견제·감시할 수 있는 지방의회에 대해서도 의안발의권뿐 아니라 지방의회가 휴회를 할 경우엔 지자체장 자체 판단으로 선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아울러 예산 및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여 제출할 수 있는 예산안의 편성 및 제출권, 계속비 제출권,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및 제출권, 예산이 성립되지 않았을 경우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예산불성립시 집행권 등 지방곳간을 주무를 수 있는 권한도 있다.

여기에 이번 대장동 특혜의혹의 사례에서 보듯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권 등 대규모 사업권은 물론 불법주차단속부터 위생감독 등 주민생활 전반에 대한 일상적인 권한까지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통일부 규정 개정을 통해 정부 승인 없이도 지자체장이 대북 지원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개발부담금 부과·FEZ 착수연기권도 지자체장에게

지자체의 권한은 30년만에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1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례·명령·규칙에 의한 지자체장의 권한 외에도 국가사무의 상당 부분을 이관하면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년(1994~2013년)간 중앙정부의 국가사무 중 1만2734개(18.9%포인트) 사무가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넘어가 지방사무가 전체 사무의 32.3%를 차지하게 됐다. 급기야 국회는 지난해 ‘중앙행정권한 및 사무 등의 지방 일괄 이양을 위한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46개 법률안을 통과, 올해부터 400개 업무가 추가로 지자체 권한으로 이양된다.

이후에도 계속 이관되면서 지난해 1차 지방이양일괄법 통과를 계기로 올 초 모두 16개 부처 400개의 사무처리 권한이 일괄적으로 넘어갔다. 국토개발부의 개발부담금 부과· 징수 권한, 산업부의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착수기한 연기권한 및 경제자유구역 내 유치원, 외국교육기관 설립 권한 등이다.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는 2~3차 지방이양일괄법을 제정, 지방이양사무를 계속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지자체장의 고유 권한이 강하다보니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사이의 대립 갈등도 빈번하다. 직제상으로는 광역자치단체장이 우위에 있지만 같은 선출직인 만큼 기초자치단체장이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시와 서초구 사이에 불거졌던 재산세 환급문제가 대표적이다. 당시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1가구 1주택 소유자’ 재산세 부담 감경을 위한 조례를 개정해 재산세 환급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서울시와의 갈등이 불거졌다.

자치분권 강화 목소리 높아

전문가들은 지자체장의 무소불위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자치분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중앙정부에서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에 비해 지방정부에서 자치단체장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는 크게 약하다. 지자체 산하단체 설립 및 직원 임명권은 물론 지방의회에 대한 인사 및 예산편성권이 모두 지자체장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내년 1월 시행되면 지방의회 인사권은 일단 지방의회가 확보하게 되지만 독립기관인 지방의회의 예산편성권은 여전히 지자체장에게 있다.

강윤호 한국해양대 교수(한국지방정부학회 회장)는 “의회가 집행기관을 대등하게 견제하며 균형을 이루기 위해선 방의회 예산에 대한 편성권도 지자체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과 동떨어져 강력한 단체장-약한 의회 구조를 낳고 있는 현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실정에 맞는 지방정부의 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은 단체장 직선제 또는 내각제형을 주민이 선택할 수 있고 미국은 기업의 전문경영인과 유사하게 의회가 선임하는 임명행정관제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지방자치를 구현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역 내에서는 막강한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통해 단체장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사전·사후적 견제기능은 미흡하다”며 “주민자치 강화, 내각제형 지자체 등 지방정부의 구성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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