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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연합 전문경영인, 한진3代 쌓은 해외네트워크 견줄 수 있을까?

이승현 기자I 2020.02.17 17:02:07

한진칼 주총 관전포인트..항공전문성 vs 전자투표제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 비경험자 CEO한 적 없어"
항공사CEO, 해외네트워크 중요..조양호, 1년 절반 해외에
조원태, 전자투표제 놓고 고심.."지금은 때 아닌 듯"

착륙을 앞둔 대한항공 여객기가 강서구 공항동 본사 위를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다음 달 27일 열릴 예정인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180640) 주주총회를 앞두고 표 대결을 벌이고 있는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 측(이하 주주연합)이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며 주주들의 표심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주주연합 추천 이사진의 항공전문성 부재와 조 회장 측의 전자투표제 도입 등이다.

◇대기업 전문경영인 출신이지만 항공 업무 경험 없어

17일 업계에 따르면 주주연합이 추천한 이사진 후보들을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과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 김치훈 전 한국항공 통제본부장 등 사내이사로 추천된 후보들에 대한 평가가 많다. 주주연합이 주총에서 승리하면 이들이 전문경영인으로 실제 그룹 경영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주주연합에 따르면 김 전 부회장은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과 SK C&C 대표이사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으로 SK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현재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배 전 부사장도 삼성전자에서 중국, 중동·아프리카 총괄 등을 맡은 조직관리 및 영업 분야 전문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항공이나 물류 관련 업무 경험은 전무하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경영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며 “실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항공업 경험이 없는 사람을 최고경영자(CEO)로 앉힌 적이 한번도 없었고, 해외 주요 항공사 역시 모두 전문가들이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 김치훈 전 대한항공 상무
◇조양호·조원태 父子, 해외 네트워크로 사업 확장

특히 해외 네트워크가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가 이런 인프라를 갖추는 게 필수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고 조양호 회장의 경우 1년에 절반 이상 해외 출장을 떠나 신시장 개척에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항공업계의 UN’으로 불리는 IATA(국제항공운송협회)에서 1996년부터 최고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아 활동했고,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았다. 또 1990년대 후반부터 동맹체로 재편된 세계 항공업계 속에서 조 회장은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가 참여하는 ‘스카이팀(SkyTeam)’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조 회장이 갖고 있는 해외 네트워크 덕분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조원태 회장 역시 2003년 그룹에 입사해 대한항공 경영기획·자재·여객사업·경영전략·화물사업 등 주요 사업 부문을 두루 경험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살려 IATA 연차총회 의장으로 지난해 열린 IATA 서울총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김신배 후보는 주로 국내사업에서 일을 했고 퇴직한지도 10년이 넘었는데 글로벌 환경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고, 빠르게 변하는 항공시장에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배 후보도 비슷한 이유로 전문경영인으로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했다. 김치훈 후보 관련해선 대한항공 노조에서 비판했듯이 항공산업의 전문성이 없는 ‘조현아의 꼭두각시’라는 혹평이 나온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과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오른쪽).(사진=연합뉴스)
◇조원태, 전자투표제 도입 부정적..막판 반전 가능성도

이에 대항하는 조원태 회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주주연합이 제안한 전자투표제 도입과 공개토론 수용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전자투표제는 주주들이 주총장에 직접 나오지 않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온라인으로 안건에 대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소액주주의 의견이 보다 폭넓게 반영될 수 있어 주요 주주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

조 회장 측은 전자투표제의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이번 주총부터 도입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주주연합과 1~2% 차의 박빙 대결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또 KCGI가 한진그룹의 위기상황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공개토론을 제안했지만, 이를 수용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주주가치 제고 방안으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검토했지만 시기상 이번은 도입하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분위기에 따라 막판 회심의 일격으로 전자투표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도 관측했다. 한진칼은 3월 주총 전인 이달 말이나 내달 초 이사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한편, 한진그룹의 대한항공·한진·한국공항 3개 노동조합은 이날 주주연합을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 사실상 조 회장 체제에 손을 들었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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