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삼성 '30대 임원' 나온다…인사혁신 승부수 띄운 JY

이준기 기자I 2021.11.29 19:07:55

유연·수평 지향…실리콘밸리식(式) 인사제도 도입
임직원 대토론회, 노사협의회·노조 의견청취 등 거쳐
美 출장 중 글로벌 ICT기업 경영진과도 의견 나눠
재계 전반에 녹아들 듯…'연공서열' 韓사회에도 울림

[이데일리 이준기 신중섭 기자] “삼성전자의 새 인사제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초석이 될 거다.”(재계 관계자)

앞으로 삼성전자에서 ‘30대 임원’이 배출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29일 유연하고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식(式) 인사제도를 받아들이면서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 창업이념인 ‘인재제일’을 계승·발전하되, 연공서열을 타파, 젊은 경영진을 조기 육성하겠다는 게 이번 인사제도의 특징이다. ‘뉴삼성’ 도약을 위해선 일하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됐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새 인사제도는 일단 내년부터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에 우선 적용하나, 향후 계열사 전반에 녹아들 것으로 보인다. 그간 삼성이 재계의 ‘스탠다드’ 역할을 해온 만큼 이번 새 인사제도는 다른 국내 기업은 물론, 우리 사회 조직문화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임원 직급 통합·승진 연한 폐지·JY의 파격

삼성의 새 인사제도는 임원인 ‘부사장·전무’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합, 직급단계를 과감히 줄이고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 및 승격 포인트를 폐지, 과감한 발탁 승진을 가능토록 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지금까지 기존 CL(Career Level) 4단계(CL1∼CL4) 중 CL2(사원·대리급), CL3(과·차장급)는 각각 10년 가까이 돼야 승격이 가능했지만, 이젠 수년 만에 이뤄질 수 있게 된 셈이다. 30대 임원은 물론 40대 최고경영자(CEO) 등도 가능하다는 게 삼성전자 측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성과 및 전문성을 다각도로 검증하기 위한 ‘승격세션’을 도입, 젊고 유능한 임원을 조기 배출할 수 있는 기반 구축했다”고 했다. 더 나아가 회사 내 인트라넷에 표기된 직급·사번 정보 삭제, 매년 3월 공식 승격자 발표 폐지. 사내 공식 소통 시 상호 존댓말 사용 원칙 등의 내용도 담겼다. 또 우수 인력이라면 정년이 지나도 지속해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시니어 트랙’ 제도도 마련했다.

기존 엄격한 상대평가에서 상위 10%인 고성과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상위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로 변경한다. 부서 내 경쟁을 지양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부서장이 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직원을 돕고자 ‘수시피드백’ 제도도 도입했다.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임직원들에게 다른 직무·부서로 전환할 기회를 부여하는 사내 FA(프리에이전트) 제도를 만들어 근무 방식·부서 이동을 더 유연하게 했다.

사실 새 인사제도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이 부회장은 작년 5월 대국민 입장 발표 때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등 인재양성에 방점을 찍은 인사제도 개편을 수차례 예고한 바 있다. 그렇다고 암암리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임직원 온라인 대토론회 및 계층별 의견청취 등을 통해 방향을 잡고 노사협의회·노동조합, 각 조직의 부서장, 조직문화 담당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대화를 통해 구체적 세부방안을 수립했다. 임직원 협업을 장려하기 위해 전격 도입하려 했던 ‘피어리뷰’(동료평가) 제도가 ‘시범 운영’으로 방향을 튼 건 의견수렴 과정에서 나온 ‘무한경쟁 우려’ 목소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삼성 측 관계자는 “2016년 6월 ‘스타트업 삼성’을 모토로 조직문화 개편에 나선 지 5년 만의 인사제도 개편”이라며 “향후에도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직원 의견을 지속해서 수렴해 인사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오른쪽)의 모습. 사진=삼성전자


美실리콘밸리 경영진과 조직문화 ‘심층 토론’

재계는 새 인사제도를 시작으로 삼성전자는 ‘뉴삼성’으로의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 중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새로운 삼성을 함께 만들어가자”며 ‘뉴삼성’ 구축을 재차 강조한 뒤 나온 첫 인사제도란 점에서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출장길에 이뤄진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CT 기업 경영진들과 회동 때도 ‘일하는 문화’ 및 ‘조직문화 발전’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를 통해 얻은 조직개편 인사이트가 이번 제도개편에도 반영된 것으로 안다”며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과거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으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창의와 도전의 ‘뉴삼성’을 만들기 위해선 조직문화와 인사제도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이 부회장은 판단한 것 같다”고 봤다.

이 부회장이 일하는 문화부터 ‘미래지향적’으로 바꾸겠다는 분명히 한 만큼, 삼성의 새 인사제도는 다른 계열사에도 자연스레 전이될 것으로 관측된다. 더 나아가 재계 전반에도 삼성의 인사제도를 축으로 한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재계 전반의 관측이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새 인사제도는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적잖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돌파구는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삼성도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거나 기존의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만드는 데 목말라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인사제도 개편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4일 오후 열흘 간의 미국 출장길을 마치고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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