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유통기한으로 연 1.5兆 손실…소비기한 변경시 보관이 중요

김보경 기자I 2020.11.11 18:02:48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②
냉장 유통·보관 발달, 식량안보 중요성 대두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차이 소비자 인식 교육 필요
우유 등 유제품 도입 시간 필요하면 계도기간 부여 검토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우유 상품의 유통기한(사진=김무연 기자)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2023년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바쁘다. 정부는 2012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행 표시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했다가 홍보부족으로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다. 1985년 도입 이후 35년간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려면 홍보와 교육, 냉장유통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식량안보 중요성↑…소비기한 공감대

식품업계와 국회 등에서 소비기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는 10여 년 이상이 됐다. 소비기한 도입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불필요한 식품 폐기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식품업계는 유통기한이 지난 가공식품의 폐기로 인한 생산단계의 손실 비용을 연간 약 65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유통기한·소비기한 병행표시에 따른 영향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식품업체의 손실 비용은 5900억원, 가정 내 가공식품 폐기비용은 9500억원으로 추산해 총 1조5400억원의 식품 폐기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적 비용 절감보다 소비자들의 식품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번번이 논의가 중단됐다. 냉장 유통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점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보관방법도 철저히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유통기한보다 긴 소비기한을 도입할 경우 소비자들의 식품 안전 리스크가 더 높아진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이 곡물 수출제한이나 금지조치를 시행하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됐다. 올해 노벨 평화상도 유엔 세계식량계획(WEP)이 받을 정도다. 노벨위원회는 WEP 선정이유로 “코로나19 백신이 나오기 전 혼란에 대응하는 최고의 백신은 식량”이라고 식량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유통기한으로 인한 먹을 수 있는 식품 폐기는 심각한 낭비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냉장 유통·보관 시스템도 발전하면서 소비기한 도입에 따른 식품 안전 우려도 낮아졌다. 남은 것은 국민들에 대한 홍보·교육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소비기한은 식품 특성에 맞게 보관 상태를 잘 지켰다는 전제하에 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아직도 냉장 보관할 것을 상온에 두는 등의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보관방법의 중요성에 대한 소비자 교육과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에 대한 홍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통기한에 따른 식품 폐기 손실 비용(표=이동훈 기자)
◇대표 품목 권장 소비기한·소비기한 설정 가이드 제공


식약처는 연내 소비기한 표시제를 위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하위법령 개정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는 권장 소비기한과 소비기한 설정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행 유통기한 체계에서도 대표 품목에 대한 권장 유통기한과 제품별 유통기한을 설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식품업체들이 따르게 하고 있다. 소비기한으로 변경되면 그에 따른 기준이 새롭게 필요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등의 발표에 따르면 식빵은 유통기한이 지나고 20일까지 변질되지 않고, 냉동만두는 유통기한 후 25일이 지나도 섭취할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흰우유)도 50일이 지나도 섭취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는 개별 실험 결과이고 소비기한이 정식적으로 도입되면 대표적인 식품에 대해 권장 소비기한을 따로 정해야 한다. 또 각 식품업체가 제품별 소비기한을 어떻게 정할지 안전계수 적용 등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형 식품사들은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소비기한을 정할 수 있을 테지만 식품업계는 중·소형사들이 많다”며 “이들이 소비기한 표시에 어려움이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주기 위해 연구개발(R&D)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냉장유통 중요한 유제품은 추가 계도기간 줄 수도

식약처는 소비기한 도입을 위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6월 포럼을 열었다. 포럼 이후 유통기한에 가장 민감한 우유·낙농업계는 반발했다. A우유업체는 편의점과 동네슈퍼 등에서 유제품의 냉장보관이 철저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기한만 믿고 소비자들이 섭취하면 탈이 날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도 지난달 9일 성명서를 내고 “‘유통기한이 길지 않고 신선한 식품’이라는 국산 우유·유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수입산 유제품으로부터 국산 우유·유제품시장을 일정부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면 유가공품 수출국에 이익이 되는 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식약처는 우유·낙농업계와의 간담회 자리를 갖고 “판매처에서 냉장보관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소비기한 안전성에 문제가 없으려면 보완해야할 점이 무엇인지 현황파악을 할 예정”이라며 “2년의 유예기간 이후에도 보완점이 있다면 일부 품목에 별도의 계도기간 1~2년을 주는 방법도 있다”고 설득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유 등 유제품은 대부분 오픈형 냉장고에 보관되는데 대형마트는 오픈형이라도 냉장 온도를 매우 낮게 설정하지만 편의점이나 동네슈퍼에서는 온도가 그 정도로 낮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들수록 온도유지가 어렵다”며 “이럴 경우 에어커튼을 치거나 오픈형 냉장고가 아닌 음료수 냉장고로 보관 장소를 바꾸는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