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의무기록지 쓰는 의사는 옛말…AI 의료녹취 시장 뜬다

김국배 기자I 2021.04.27 16:46:38

AI 음성인식 기술이 대체, 정확도 더 높고 빨라
국내 대형병원들도 차츰 도입
뷰노, 셀바스AI 등 국내 AI 기업들 초기 시장 공략
일각에선 의료 분쟁 등 문제 줄일 방안으로 주목

신동우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외과 교수가 셀바스AI의 의료 녹취 솔루션인 ‘셀비 메디보이스’를 수술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사진=셀바스AI)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음성인식 기술 기업인 뉘앙스커뮤니케이션(이하 뉘앙스)을 197억 달러(약 22조원)에 인수했다. 2016년 262억 달러를 들여 직장인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을 인수한 데 이어 가장 큰 규모다.

애플의 음성인식 비서인 ‘시리’ 개발에 참여했던 것으로도 알려진 뉘앙스는 자동차, 의료 분야의 인공지능(AI) 기반 음성인식 기술에 강점을 가진 회사다. 미국 병원의 77%가 의사와 환자 간 진료 대화 내용 등을 기록하기 위해 뉘앙스의 의료 녹취 서비스를 쓴다. 지난해 이 회사가 거둔 약 1조7000억원 가량의 매출 중 1조원이 의료 분야에서 나왔다.

국내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방안으로 AI 기반 의료 녹취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의료 녹취 서비스란 의사의 진단과 처방, 영상 판독 소견 등 각종 의료 기록을 AI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저장하고 문서화해주는 것이다.

의무기록, 손 대신 말로

통상 의사들은 수술이나 회진 후 기록지를 수기로 작성해왔다. 바쁜 의사들을 대신해 이런 일을 하는 ‘전사자’를 두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의료진을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주소다. 대개 젊은 의사들은 직접 ‘타이핑’한다. 의료진이 아닌 전사자에게 의료 용어도 쉽지 않다. 이런 의무기록 업무가 쌓이면 환자의 대기시간도 길어진다.

이 때문에 AI 음성인식 기술을 도입하는 병원은 차츰 늘고 있다. 현재 가장 활발한 분야는 의료 영상 판독문 작성이다. 의료 영상 정보는 매년 20~40% 가량 증가하고 있다. 기존에는 의사가 영상을 판독한 음성 녹음 파일을 전사자가 듣고 쓰면서 수정하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면, 이제는 AI가 이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환자 입장에서는 입원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 편의성을 증대시켜 재방문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음성인식 정확도는 어떨까.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AI 비서보다 오히려 정확한 편이다. ‘쓰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속도도 수기에 비해 1.5배 정도 빠르다.

성균관대 음성인식 박사인 윤재선 셀바스AI 음성인식랩장은 “AI 스피커가 인식해야 하는 단어가 100만개라면, 영상학과에서 쓰는 단어는 10만 개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인식률이 높다”며 “전사자를 쓰는 경우에도 정확도가 92~93% 정도인데 AI는 98%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내는 아직 초기 시장…AI 기업들 뛰어들어

국내에서 의료 녹취 서비스는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초기 시장이다. 아직 통계조차 없다. 뷰노, 셀바스AI 같은 국내 AI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일부 대형병원이 의료녹취 서비스를 도입해 사용 중이다.

실제로 셀바스AI는 신촌 세브란스병원·국립암센터·충남대병원 등에, 뷰노는 인하대병원·서울아산병원·이대목동병원 등에 AI 음성인식 기술을 제공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의료 녹취 서비스 시장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미국 의료정보보호법(HIPAA)은 환자가 본인의 의료기록 수정을 요구하거나 의료기록 사본을 요청할 수 있다. 접근 권한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뉘앙스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정민화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의료 녹취 서비스가 처음 상용화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라며 “그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의료기관에 의사와 환자 간 대화 녹취록을 만들게 하면서 시장이 확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분쟁·대리 수술 문제 줄일까

일각에선 의료 녹취가 법제화될 경우 의료 분쟁, 대리 수술, 성희롱 문제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국내에서는 대리 수술 논란이 불거지면서 20대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까지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 11일 한국 의료계의 대리 수술 실태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진료 내용이 기록되는 만큼 의무 기록을 조작할 우려가 줄고, 더욱 정확하게 의료 현장을 묘사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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