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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할래?" 욕설·혐오·성희롱 난무 교실서 자라는 아이들

안혜신 기자I 2018.07.19 16:36:11

여가부,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 집담회
학생·교사 등 참여해 교실 안 성차별 언어 심각성 전해
"교사 인식 개선·성평등 교육 의무화 필요"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했다가 ‘정신나간 X’라는 욕을 면전에서 들었어요” “핑크색을 좋아하는 남자는 게이 소리를 들어요” “가슴 큰 여학생이 지나가면 남학생들이 ‘나 그거 큰데 나랑 할래?’ ‘가슴에 박아보고 싶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해요”

지난 18일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서는 여성가족부 주최로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관한 2차 집담회가 열렸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참석한 이번 집담회에는 전국 다양한 학교에서 남녀학생과 선생님 등 15명의 관계자가 모였다. 이 자리에서 10대 청소년들이 고백한 교실 환경은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8일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서 열린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에 관한 2차 집담회’에 참석해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들의 성차별 언어 사용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 여성가족부)
◇“성희롱 발언 불편해 하면 ‘예민하다’ 타박”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본인들이 직접 겪거나 전해 들은 일상 속 차별과 혐오표현에 대해 털어놨다. 교실에서는 성희롱이 일상이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지나치게 원색적이고 문제의 소지가 될 말들이 넘쳐난다.

“남학생들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배경 이미지 등으로 성희롱적인 사진을 걸어두는 경우가 많아요. ‘남자는 여자 가슴을 만지면 행복하다’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해요. 이에 대해 불편하다고 말하면 예민한 사람이 돼버려요. 사실은 그들이 둔감한 것 아닌가요?”

“점심 시간에 남학생들이 여학생 이름을 칠판에 하나하나 적으면서 얼평(얼굴 평가)과 몸평(몸매 평가)을 했어요. ‘얘는 섹스하기 싫다’ ‘얘는 얼굴이 못생겼지만 가슴이 커서 괜찮다’ ‘섹스 파트너로 좋다’ ‘내 X감(자위할 때 사용한다는 비속어)’ 라는 식으로요”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이 있었는데 남학생들끼리 웃으면서 ‘강간범이라고 적을까?’ ‘여자친구 납치’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이라고 했어요. 일상 속에 이런 것들이 너무 만연하고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성희롱적인 언어와 욕설 등 폭력적 어휘가 넘쳐난다고 했다.

“한 반에서 남학생의 95%는 이런 언어를 사용한다고 보면 돼요. 남자애들 사이에 서열이 있다보니 이런 단어 사용에 동참을 하지 않으면 배척당하는 분위기죠. 그런 말을 싫어하는 남학생들도 분명히 있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쓰는 경우도 많아요”

◇“언어 폭력 심각해도 학교는 방어막 안돼”

학생들은 학교가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성적인 비하 표현을 들어도 남학생들이 무리지어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무서워서 직접 말하기 쉽지 않아요. 저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이후로 복도에 붙여둔 이름표가 칼로 찢긴 적도 있어요”

“학급회의가 있어서 안건으로 건의하려 했는데 공개적인 자리다 보니 누가 건의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는 게 무서워서 결국 하지 못했어요. 선생님께 말씀 드려봤지만 심각한 처벌은 없었어요. 학교폭력 사안으로 처리도 되지 않아요”

오히려 이들은 교사들의 인식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들 스스로가 아이들에게 성차별적인 언어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학생들 카톡방에서 한 남학생이 특정 여학생에 대해 심한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고, 같은 카톡방에 있던 다른 남학생이 이 사실을 해당 여학생에게 알려줬어요. 충격을 받은 여학생이 선생님에게 알렸는데 선생님은 ‘그 남학생은 왜 가운데서 그런 사실을 전해서 일을 크게 만드나’라고 말씀하셨어요”

“축제에서 여학생들이 짧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남학생들이 선생님 바로 앞에서 성희롱 발언을 뱉어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가슴 큰 여학생을 보면서 ‘건강하게 잘 컸네’ 라고 말하는 학생의 말에 동조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봤어요”

◇“성평등 교육 의무화·교사 인식 개선 필요”

집담회에 참석한 학생과 선생님은 해결방안으로 ‘성평등 교육의 의무화’를 꼽았다. 또, 학교 내에서 언어적 폭력에 대해서도 좀 더 강력한 처벌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교사에 대한 교육 강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날 집담회에 참석한 한 교사는 “교사 인식 개선을 위해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과 연수가 필요하다”면서 “성평등 교육이 의무화가 된다면 아이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한 학생은 “성희롱적인 발언이나 성차별적인 발언을 듣고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해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점이 견디기 힘들다”며 “어릴 때부터 이런 발언을 너무 쉽게 접하다보니 이런 말들이 잘못됐다는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현장의 생생한 얘기를 직접 들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느꼈다”며 “성평등 교육 강화와 교사 교육 중요성에 대해 교육부에 건의하는 한편 앞으로 학교와 캠페인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1차(6월22일 초등학생)와 2차(중·고등학생) 집담회를 마친데 이어 향후 대학생 등 청년 대상, 온라인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연속해 집담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어떤 경로로 성차별 언어를 알게 됐는지 또 어떤 언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해 하반기에 시작하는 ‘성차별 언어 현황연구’에 반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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