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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꺼내든 납품단가연동제…입법 대신 정부지침 추진

조용석 기자I 2022.03.14 16:23:18

2008년 MB가 쏜 연동제…尹 공정사회공약으로 재추진
시장경제 훼손·소비자 부담 우려 등으로 도입 실패
대기업 “단점 뚜렷” vs 中企 “불공정 거래 문화개선”
국민의힘 “연동제 필요하나 강제 입법화만 방법 아냐”
"입법보다 정부 가이드라인 제시 등 정책유도 바람직"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등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본격적인 정권 인수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유세 과정에서 공약했던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두고 재계 관심이 크다.

예상외로 시장 자율성에 더 무게를 두는 보수 정권이 2008년 먼저 추진했으나 실패했던 연동제를 윤 당선인이 다시 꺼내 들었지만, 대기업들의 우려가 큰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 모두 수긍할 해법을 찾을 수 있을 지 관심사다.

2008년 MB가 쏜 연동제…尹 공정사회 공약 재추진

14일 윤 당선인은 정책공약집에 `납품단가에 원자재 가격 변화를 자동 반영하는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검토`를 공정사회 공약으로 내세웠다. 원자재가 상승 시 의무적으로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하청업체)가 대금 조정을 논의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한 뒤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연동제를 과감하게 검토하겠다는 복안이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새 정부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주요 공약이기도 했다.

납품단가연동제란 원자재 등 가격이 급등할 경우 가격 상승분을 자동으로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제도로, 알루미늄 등 금속, 석유 등 원자재 비중이 매우 높은 물건을 만드는 중소기업과 이를 납품받는 대기업 사이에서 적용될 수 있다. 중기중앙회 등 중기업계에서는 강력하게 도입을 요청했던 제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왼쪽)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독특한 점을 이를 주요 국정과제로 먼저 내건 것은 보수 정권인 2008년 이명박 정부였다는 점이다. MB정부는 인수위 업무보고부터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원자재가격과 납품단가를 연동하는 시스템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연동제를 법제화하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반대, 대안으로 조정협의 의무제가 먼저 도입됐다. 2년 뒤 조정의무제가 효과가 없다며 박선숙 의원 등이 법으로 강제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 입법화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대기업 “단점 뚜렷” vs 中企 “불공정 거래 개선”

앞서 연동제가 도입되지 못한 데는 대기업뿐 아니라 경쟁정책을 주관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가 컸다. 공정위는 당시 연동제는 시장경제질서의 핵심인 경쟁을 해칠 수 있고 나아가 최종 가격으로 바로 반영돼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또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이에 대한 부담으로 대기업이 수급 사업자를 해외로 변경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법학자들은 원사업자-수급사업자의 정당한 사적(私的) 계약에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민법에 어긋나며 헌법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주장한다.

대기업이 주요회원사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측은 “최근 곡물가격 등이 오르고 있는데 연동제를 하면서 제과업체가 이를 모두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다면 물가 불안은 물론 소비자들의 불만도 상당할 것”이라며 “진정한 연동제라면 원자재가격의 오르내림이 모두 반영돼야 하는데 납품단가가 내리는 것도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재 자율적으로 연동제를 반영한 대기업도 많다는 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자료 = 중기중앙회)


반면 중소기업 측은 △원자재 가격 상승 리스크 분담 필요 △협상력 차이로 인해 자율조정 불가능 △국가가 불공정 사적 계약에 개입 필요 등을 연동제 도입 필요 이유로 주장한다. 또 2008년 연동제 도입 대신 대안으로 추진된 공급원가 변동에 따른 의무협의제 역시 원사업자는 협의 요청을 받은 후 10일 이내에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고 강제성이 없고 중소기업은 거래단절 또는 보복 우려 등으로 활용이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김은하 KBIZ중소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관련 정책연구를 통해 “납품대금 문제는 단순히 기업 간 가격 결정 분쟁이 아닌 불공정 거래 문화개선과 대·중소기업 양극화 완화라는 국가경제 전반의 편익 증대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연동 대상 원자재와 연동 기준을 설정하는 표준계약서를 상생협력법에 권장 또는 의무화하는 형태로 연동제를 입법화할 것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연동제 필요하나 강제 입법화만 방법 아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공약을 만들 당시 연동제 취지는 공감했으나 이를 어떤 방식·수위로 제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윤석열 캠프 정책본부 부본부장으로 경제 공약 전반을 조정한 윤창현 의원은 “연동제 도입에 따른 우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반드시 강제화하는 형태가 아니라 정부가 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도덕적 경영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법화하는 방식보다 강제력이 낮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책적으로 계속 유도하는 것도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자세한 정책 방향과 정책 추진 시 중기부와 공정위 중 어디가 주무 부처가 될 것인지 등은 인수위에서 더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에 앞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해외 역시 민간 하도급 계약에 연동제를 법제화한 경우는 없다. 중기중앙회 등에 따르면 미국은 민간거래에 대해서는 사업자 단체 등에서 제정·권장하는 약관 형식을 활용해 연동제 취지를 도입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연합(EU)은 건설업종의 표준계약서에 원재료 가격 변동 조정사항이 포함되도록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2008년 처음 연동제를 논의할 때 이미 언급됐듯이 입법화 형태로 강제 도입하는 것은 법 체계를 흔들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정부가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하고 원사업자가 사회적 책임 등을 인식해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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