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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 혈압약 때문에" 일선 의료현장, 하루종일 '북새통'

강경훈 기자I 2018.07.09 16:46:53

대학병원 홈페이지에 "해당 약 처방 안한다" 안내
복제약 처방 많은 개원가 "약 바꿔달라" 요청 빗발
약국 "명확한 지침 없어 환불·교체 못해줘 환자 항의"

서울시내 한 약국에서 환자들이 처방받은 약을 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지난 토요일에 뉴스를 접한 뒤 불안해서 이틀간 혈압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월요일에 약을 바꾸기 위해 또 다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았는데요. 불안감과 경제적 부담을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하나요.”

중국산 혈압약 원료의약품에서 발암성이 의심되는 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혈압약을 복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우려는 불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 7일 중국 ‘제지앙 화하이’가 만든 ‘발사르탄’을 사용해 만든 혈압약에 대해 판매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보다 이틀 전인 5일 유럽의약품청(EMA)이 제지앙 화하이가 만든 발사르탄에서 발암의심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 해당 품목에 대해 회수조치를 내렸기 때문. 판매중단 조치는 82개 제약사의 총 219개 품목에 내려졌다.

식약처는 주말 내내 전국 지방 식약청 관계자들을 동원해 82개 제약사들이 실제로 이 원료를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 결과 이날 오전 이 원료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91개 품목에 대해 판매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최종적으로 확인된 판매중단 품목 수는 115개다. 식약처 관계자는 “다른 품목에 대한 현장조사도 실시할 것”이라며 “이후 해당 원료를 쓴 약에 NDMA가 얼마나 들었고 이게 유해한 수준인지 밝히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혈압약 원료의약품인 발사르탄은 스위스 노바티스가 개발한 성분으로 오리지널 약은 ‘디오반’이다. 디오반은 지난 2012년에 특허가 만료됐으며 이후 수백 종의 복제약이 출시됐다. 국내에 판매가 허가된 발사르탄 제제만 총 571개다. 이 중 판매중단 조치가 내려진 품목은 20%(115개)다.

이날 병원과 약국에선 적지 않은 혼란이 이어졌다.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의정부성모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들은 홈페이지 메인화면이나 약물정보에 “해당 발사르탄 성분의 혈압약을 처방하지 않고 있다”고 안내했다. 의정부성모병원 관계자는 “우선 병원 내 처방의약품 성분을 확인한 후 병원에 납품하는 제약사들에 개별적으로 문의했다”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처방 중인 혈압약에 해당 성분이 들어있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환자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내과 원장은 “어떻게 발암물질이 들어간 약을 처방할 수 있냐는 항의와 약을 바꿔달라는 요청이 아침부터 이어지고 있다”며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에게 계속 사과하느라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시약사회 관계자는 “회원 약국들에 일일이 연락, 구비해 놓은 발사르탄 제제에 문제의 제품이 있는지 확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판매중지에 해당하는 약의 처방 수정 및 처방전 재발급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의사와 상의해 해당 원료가 들어 있지 않거나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약으로 바꿀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환자는 “처방전을 새로 받기 위해 진료를 한 번 더 받고 새 약을 사느라 불필요하게 돈을 썼다”며 “이전에 처방받은 약을 환불해 달라고 하니 의사나 약사 모두 명확한 지침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우려는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2A군’으로 정한 발암의심물질이다. 2A군은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에 대한 증거는 충분히 밝혀졌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암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불충분한 물질’이다. 소·돼지 같은 붉은 고기가 2A군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 흡연을 하거나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벤조피렌’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명확한 ‘1군’ 발암물질이다. NDMA가 구운 고기보다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셈이다.

한 종합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를 해야지 해당 약을 먹으면 암이 생긴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다”라며 “불필요한 걱정으로 임의로 약을 끊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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