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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구조조정’에도 사업 존폐위기…국회만 기다리는 스타트업

김정유 기자I 2023.03.27 19:10:21

[기득권 늪에 빠진 K-스타트업]②
'로톡' 2년새 변호사 수 절반 '뚝', 50% 구조조정도
김본환 대표 "산업 발전 골든타임 지켜달라" 하소연
갈등에도 정부 중재방안 없어, 투자 위축까지 우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유 김국배 기자] “로톡의 상황은 개별 스타트업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닌, 리걸테크(법률기술) 산업 침체와 이로 인해 감소될 국민 이익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국민 편익을 위해서라도 리걸테크 혁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산업 발전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와 국민 모두 관심을 가져주세요.”

최근 변호사 단체들과의 갈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김본환(40) 로앤컴퍼니 대표의 하소연이다. 한때 리걸테크 시장의 혁신 스타트업으로 이름을 알렸던 로앤컴퍼니는 최근 경영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변호사 수가 2년만에 3966명에서 2000명으로 절반이 줄었고, 예상 손실액도 약 100억원에 달한다. 최근엔 회사 전체 인력 50% 감축을 목표로 한 구조조정에도 나선 상태다.

로앤컴퍼니는 2015년부터 국내 변호사 단체들로부터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경에 세 차례나 고발당했다. 모두 무혐의를 받으면서 합법성을 인정 받았지만 그새 사업은 급격히 악화됐다. 특히 2021년 5월 변호사협회가 ‘로톡’ 참여 변호사들을 징계하는 광고규정을 개정하면서 압박은 더 심해졌다.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징계 변호사들의 이의신청을 받았지만, 관련 심의를 3개월 연기하면서 오는 6월까지는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적어도 6월까지는 로앤컴퍼니의 시계는 멈춘 상태다. 국무조정실에서도 로톡의 사안을 중요하게 보고 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기 힘든 상황이다.

장혜영 국무조정실 신산업규제혁신팀장은 “로톡 갈등에 대한 심각성을 잘 알고 있고,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해결책을 내부 협의 중에 있다”며 “다만 논의 내용은 비공개여서 아직 말씀드리기 힘들다”고 했다.
지하철역사에 걸린 로앤컴퍼니의 법률지원서비스 ‘로톡’ 광고. (사진=로앤컴퍼니)
발목 잡힌 스타트업들…직역단체와 갈등 심화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주요 직역단체들과의 갈등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 ‘삼쩜삼’ 자비스앤빌런즈는 한국세무사회, 성형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는 대한의사협회 등과 얽혀 있다. 더불어 해당 스타트업이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서 규제로 작용하는 입법도 진행 중이다.

‘강남언니’는 그나마 최근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 현재 의사단체 자율에 맡겨진 의료광고 심의기준을 정부가 개정 요구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최근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 병합심사돼 통과돼서다. 업계는 의사단체가 자의적 기준으로 플랫폼내 합법 의료 광고를 불법으로 분류할 수 없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조은 힐링페이퍼(강남언니 운영사) 이사는 “진료지 정보 등이 소비자에게 공개되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우려를 벗어나게 됐다”며 “부디 합리적인 의료광고 심의와 모니터링이 될 수 있도록 법안 통과까지 면밀한 검토가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지호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공동회장(닥터나우 이사, 왼쪽 두번째)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스위치22에서 열린 보편적 의료체계 촉구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성명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확산되는 기득권 산업과 갈등, 중재 쉽지 않아

이같은 전문직역 단체들과의 갈등으로 자칫 향후 미래 성장을 이끌어갈 스타트업들이 ‘성장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수차례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직역단체들의 일방적 중재 거부, 국회의 낮은 이해도 등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탓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용순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정책관은 “갈등 주제가 다 다르고 주무부처들도 다 산개돼 있어 (중재하기엔) 제한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스타트업 입장에서 최대한 갈등 중재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도 “사회적으로 전문직 서비스는 플랫폼이 아니면 소비자 장벽이 높다”며 “변호사, 세무사 등은 국민들이 평소 이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은데, 이를 쉽게 연결해주는 서비스는 국민 편익에서 볼 때 장려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기득권 산업의 움직임을 이끌기 위해선 정치권이 전면에 나서 기존 제도와 법의 틀을 깨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국회 유니콘팜 같은 스타트업연구모임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일단 놔두고, 이후 기존 산업이 무너질 경우 사후 대비책을 가져가는 식으로 해야한다”며 “전문직역 단체들이 새로운 싹을 가로막고 있는데, 전문업종들에 대한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자 한파까지 겹친 스타트업들 ‘이중고’

이같은 문제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스타트업 투자 시장을 더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2952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75% 감소했다. 더불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투자 심리가 더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득권 산업과의 갈등은 가뜩이나 힘든 스타트업 투자 유치에 찬물을 끼얹는 매우 부정적인 요소”라며 “스타트업들도 적시에 혁신에 성공해야 성장할 수 있다. 갈등이 지속되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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