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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카드' 다시 꺼낸 트럼프…美-中 휴전 깨지나

이준기 기자I 2019.07.17 16:30:28

美 "농산물 구입 약속 왜 안 지키나" Vs 中 "화웨이 제재 완화부터"
中 손들어준 WTO…中 "즉각 시정조치 하라"·美 "증거 무시한 결론"
각종 악재에 '대면 협상' 난항…금가는 트럼프·시진핑 '브로맨스'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우리(미국)가 원하면 (언제든) 3250억달러(약383조원)어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사진 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다시 관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진행한 각료회의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멀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맺은 휴전을 깰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에도 틈만 나면 중국을 향해 압박을 가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추가 관세’까지 거론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예상치 못한 각종 악재가 우후죽순으로 불거지면서 양국 간 ‘기 싸움’은 더욱 잦아졌고, 결국 무역합의는커녕, 대면(對面) 협상조차 잡기 요원해졌다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진=AFP
◇농산물·화웨이 충돌…WTO 돌발 판정도 변수

발단은 양국이 약속한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중국 측이 재개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은 우리의 위대한 농부들로부터 농산품을 사겠다고 했으나 그러고 있지 않아 우리를 실망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각료회의에서도 “중국이 우리와 맺은 합의를 어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의 농촌지역의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적인 지지층이다.

미국 온라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무역전쟁이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우정에 타격을 줬다”고 평가했고, 로이터와 블룸버그도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좌절감을 보인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경제참모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미·중 양국의 협상이 진전되기 위해선 필요한 단계가 있다”며 중국 측에 미 농산물 구매 약속 이행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중국쪽 말은 다르다. 시 주석이 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고, 이는 전적으로 ‘협의’ 사항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되레 미국 측이 화웨이 거래금지 규제 완화부터 해야 한다는 게 중국 측의 주장이다. 중국 상무부는 “확실한 해결책을 찾으려면 화웨이 제재가 즉시 중단돼야 한다”(가오펑 대변인)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정부가 화웨이 문제를 풀려고 해도 장애물이 많다. 미국 의회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미 상원의원 6명은 화웨이 제재 완화를 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 문제를 무역협상의 지렛대로 쓸 수조차 없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부과 발언이 이날 세계무역기구(WTO)의 판정이 나온 직후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WTO 상소기구는 이날 미국이 WTO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지 않았다며 반덤핑 상계관세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판정했다.

지난 2012년 중국은 미국이 태양광 패널과 풍력탑, 강철 실린더, 알루미늄 압출물, 종이 등 22개 품목에 대해 반덤핑ㆍ반보조금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총 73억달러(8조6000억원)에 이르는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잘못된 조사 방식을 바로잡고 즉각적인 시정조치를 취하라”고 지적했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보고서를 비롯한 다른 객관적 증거들을 무시한 결론”이라고 반발했다.

사진=AFP
◇금가는 트럼프·시진핑 ‘브로맨스’…멀어지는 합의

이처럼 설상가상으로 악재가 혼재되면서 양측의 무역협상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난 9일 전화통화로 무역협상 논의를 진행했지만, 아직 대면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전날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번 주 내 중국 측과 추가 전화협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조차 불확실하다는 게 워싱턴 안팎의 우려다. 조사기관 에버코어 ISI의 중국 담당자 도널드 스트라스츠하임은 “양국이 아직 대면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한 건 양국 관계가 2018년 말보다 못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대미(對美) 강경파로 잘 알려진 중산 상무부장을 협상단에 추가한 점도 협상을 더욱 꼬이게 할 수 있다. 미국이 협상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라는 두 명의 장관급 인사를 투입해온 만큼 류허 부총리 외 중산 부장을 투입, 격을 맞췄다는 게 중국 측의 설명이지만, 미국 측은 떨떠름한 표정이 역력하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그는 미국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양국의 ‘지지대’로 불렸던 양 정상의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 간의 진한 우정)까지 금 갈 판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한때 그(시 주석)를 좋은 친구라고 말하곤 했지만, 아마도 이제는 그렇게 가깝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측간 말 폭탄은 도를 넘고 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6.2%에 그친 것과 관련, “무역전쟁에 따른 미국의 관세가 중국 경제와 기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자,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미국의 고율 관세로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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