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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보다 이웃의 아픔 치유에 기여"..천대엽 새 법원행정처장의 소신

백주아 기자I 2024.01.11 16:12:28

대법원, 김상환 처장 후임 천 대법관 임명
사법연수원 21기 '형사법 전문가'
고위 법관 중 재산 가장 적어…'청렴한 대법관' 평가
'겸손' 가르친 부모 뜻 따라 법관의 길 걸어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물질적 부유함이 삶의 전부가 아니니 소명받은 길을 올곧게 가라’

차기 법원행정처장으로 내정된 천대엽 대법관(60·사법연수원 21기) 아버지의 오랜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고위 법관 중 가장 재산이 적은 사람으로 알려진 천 대법관에 대해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형사법 전문가로 해박한 법률 지식에 뛰어난 균형감각까지 갖춘 천 법관은 평소 청렴하고 검소한 법관으로 법원 안팎에서 두터운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대엽 대법관. (사진=서울고등법원)
지난 10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천 대법관은 세간의 평가에 대해 “늘 부끄러운 마음”이라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새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 중책을 맡게 된 것에 대해서는 “축하받을 일이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대법원은 지난 5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의 후임으로 천 대법관을 오는 15일자로 임명했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법원의 인사와 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으로, 현직 대법관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그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다.

천 대법관은 ‘비(非) 검사 출신’ 대법관으로 지난 2021년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부산 출생인 그는 부산 성도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 사법시험 31회에 합격했다. 이후 1995년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판사로 임관,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고 2012∼2014년 서울중앙지법과 2016년 서울고법에서 형사합의부를 맡았다.

그가 법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들면서다. 천 대법관의 아버지는 부산 하야리아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 사범대를 졸업해 중고교 영어 교사가 됐지만 숙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환경에서 외벌이로 문방구 장사를 하며 가사를 책임진 천 대법관의 어머니는 그가 물질적 보상보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에 기여할 수 있는 명예로운 길을 가길 소망했다고 한다.

천 대법관이 겸비한 겸손의 미덕은 그가 재판에 임해 온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21년 국회 청문회에서 그는 “무거운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설 때마다 늘 속죄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법관으로서의 삶을 돌아보면 경험과 지혜의 부족, 당사자의 진심을 통찰하지 못하는 모자란 능력에 대한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늘 낮은 자세로 재판에 임하는 삶의 태도로 읽힌다.

고위 법관 중 가장 청렴한 인물로 꼽힌 것 또한 일관성이 있다. 대법관 임명 당시 공개된 천 대법관의 재산은 2억7388만원으로 고위 법관 144명 중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의 재산은 부산 진구 당감동의 단독주택(1억500만원),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의 다가구주택 전세 임차권(1억7500만원), 15년 된 SM7 자동차(2007년식) 등이 전부였다. 천 대법관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근무 당시 월세 6만원짜리 옥탑방에서 생활을 했다. 서울고법 부장 시절 매일 버스를 타고 경기도 오포에서 서울 서초동 법원까지 편도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했다고 한다.

천 대법관은 중도 보수 성향 판사로 분류된다. 지난 정부 때 임명됐지만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한 적은 없다. 대법관 재임 중에는 조국 전 법무 장관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자녀 입시 비리 등에 대한 재판에서 주심을 맡아 징역 4년형을 확정한 바 있다.

천 대법관은 사법부의 역할을 ‘다수의 부당한 편견에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피난처’라고 정의했다. 어떤 상황에도 형평의 저울이 기울어지는 일 없이 공동체의 가치 구현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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