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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목선, 58시간 영해 항해…정경두 "경계작전 실패, 책임묻겠다"

김관용 기자I 2019.06.19 16:31:03

軍, 北 소형 목선 중간 조사 결과 발표
귀순의도로 9일 출항, 12일 이미 NLL 넘어
국방장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질타'
경계태세 허점, 안이한 해명으로 의혹 키워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지난 15일 강원도 삼척항 부두에서 발견된 북한 목선은 이미 12일 해상 군사분계선(MDL) 격인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밤부터 주민 신고로 발견된 15일 아침까지 58시간 동안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휘젓고 다녔다는 얘기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9일 상반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이번 일을 ‘경계작전 실패’로 규정하며 이를 질타했다. 그러나 유감 표명이나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았다. 조사 이후 책임져야 할 인원이 있다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19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9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번 북한 목선 관련 사안에 대해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이 과정에서 책임져야 할 인원이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국방부]
◇귀순하려 위장 조업 후 월남…표류 아닌 엔진 기동

군 당국은 이날 북한 소형 목선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목선에 탄 선원들은 애초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지난 9일 함경북도 한 지역에서 출항했다. 10일 NLL 인근까지 접근해 11~12일 위장 조업을 했다. 12일 오후 9시경 NLL을 넘어 남하한 이후 13일 오전 6시경에는 울릉도 동북쪽 약 30 노티컬마일(약 54㎞) 해상까지 왔다. 엔진을 정지하고 대기하다 이날 오후 8시께 기상악화로 해상에 표류했다. 이후 육지를 향해 항해를 재개해 14일 오후 9시께 삼척 동쪽 2~3 노티컬마일(1.8~3.6㎞)까지 와서 또 엔진을 껐다. 대기 후 15일 일출 직후 삼척항으로 다시 출발해 이날 오전 6시 20분경 삼척항 방파제 부두에 접안했다. 당시 목선은 28 마력의 엔진으로 기동해 부두에 다다랐다.

우리 군·경의 제지 없이 삼척항에 도착한 해당 목선은 15일 오전 6시 50분경 산책을 나온 지역 주민에 의해 112 신고로 알려졌다. 동해해양경찰청 소속 경비정이 이를 동해항으로 예인했다. 군 관계자는 “신고자가 삼척항에서 차림새가 특이한 4명을 발견하고 어디서 왔느냐 질문했는데, 이들은 북한에서 왔다며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할 수 있게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또 “북한 인원 4명 중 2명은 최초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출발한 것으로 1차 진술했다”면서 “당시 착용하고 있던 복장과 관계 없이 4명 모두 민간인으로 1차 확인됐다”고 말했다. 선원 2명은 인민복과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는 작업복 차림이었다.

◇해상판 ‘노크귀순’·‘대기귀순’…‘정박귀순’ 말까지

경계 실패와 이후 군·경 및 정부의 대응 미흡으로 불신이 높아진 상황이다. 앞서 2012년에도 북한군 병사 1명이 아무런 제지 없이 강원 고성 지역 철책을 넘어 우리 군 GOP까지 와서 문을 두드려 귀순한바 있다. 2014년에는 북한군 귀순자가 비무장지대(DMZ)에서 날이 새길 기다렸다가 남쪽으로 넘어온 사건도 있었다. 이번 사건이 이들 ‘노크 귀순’과 ‘대기 귀순’의 ‘해상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더해 부두에 접안해 우리 당국을 기다렸으니 ‘정박귀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북한 어선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뒤 우리 주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KBS가 보도한 사진이다. [출처=KBS·연합뉴스]
국방부는 이날 지난 17일 언론 설명에서 발견 지점을 부두가 아닌 ‘삼척항 인근’이라고 한 것은 해양경찰(해경)로부터 방파제 인근이라고 통보를 받았고, 국정원 주도의 합동 조사 내용이라 얘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북한 목선의 표류를 얘기한 것은 파고가 1.5~2m여서 선박 높이 1.3m 보다 높았고 기동도 없었기 때문에 군 레이더가 발견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군 당국이 처음부터 발견 지점에 대해 알면서도 이를 밝히지 않다,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이제서야 얘기하는 것은 축소·은폐 의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당시 군 작전에는 문제가 없었고 해상 감시의 어려움만 설명한건, 군의 경계 실패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군은 해안감시레이더에 북한 소형 목선으로 추정되는 희미한 점이 있었지만 파도의 반사 신호로 판단했다. 또 IVS(지능형 영상 감시 시스템)에는 15일 오전 6시 15분경 삼척항으로 들어오는 북한 소형 목선을 약 1초간 2회 포착했지만 군은 이를 우리 어선으로 판단했다. 신고를 받고 군에 상황을 전파한 해경의 CCTV에도 이같은 내용이 있었지만, 해경은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날 통일부는 해당 목선을 선장 동의 하에 폐기했다고 밝혔지만, 현재 해군 동해 1함대사령부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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