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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바이드'의 그림자…키오스크서 작아지는 노인들

이용성 기자I 2022.05.19 16:44:19

직원 찾아 먼 곳까지 발걸음…'디지털 사각지대'
노인 2명중 1명 키오스크 이용 안 해봐…54.2%
"내 뒤에 줄서면 당황"…"노인 디지털 교육 필요"

[이데일리 이용성 이수빈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유 모(85) 씨는 지난 17일 햄버거를 사 먹으러 서울 시청 인근까지 갔다. 다른 햄버거 가게는 키오스크(무인 자동화기기)로 주문해야 하지만 시청 쪽 햄버거 가게는 계산대에서 직접 주문할 수 있어서다. 그렇게 유씨는 카운터에서 직접 주문을 할 수 있는 음식점 몇 군데를 머릿속에 저장해놨다. 그는 “여기 말고 신도림 쪽 햄버거 가게는 아예 노인들을 상대하는 직원이 있다”며 “멀어도 그런 곳을 찾으러 간다”고 했다. 이어 “얼마 전까지 노인들이 주문하면 받아줬던 곳도 이제는 무조건 기계로 하라고 한다”며 “우리 같은 노인네는 기계로 주문하기 어렵고 배워도 금방 까먹는다”고 토로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되면서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도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간에 발생하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이용 가능성의 격차를 말한다. 정보 격차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디지털 사각지대’에 몰리게 된 노인들 사이에선 불편과 공포도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종로구의 한 카페를 찾은 김 모(70) 씨는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고 주문하다 “키오스크로 해주세요”라는 답을 들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눌러보던 김씨는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김씨는 “주문하기 너무 어렵고, 가게마다 주문법이 다른데 직원이 바빠 보이니 그냥 간다”며 “값이 좀 비싸고 멀더라도 사람이 주문받는 곳에서 사 먹으러 간다”고 했다.

동묘 앞의 한 패스트푸드점 가게에서 만난 이 모(68) 씨도 “사실 천천히 하다 보면 다 할 수 있는데 내 뒤에 줄이 길게 서면 괜히 미안해서 뒷사람에게 차례를 넘기게 된다”고 말했다. 소액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던 강 모(71) 씨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다하고 하는데 우리는 ATM기도 이용할지 몰라 직원들 도움을 받는데 민망하다”고 토로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서울디지털재단이 전날 발표한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 5명 중 1명이 디지털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만 19세 이상 서울시민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키오스크를 이용해 본 고령층은 전체 45.8%로 절반에 못 미쳤다. 고령층이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움(33.8%) △필요가 없음(29.4%) △뒷사람 눈치가 보임(17.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러한 비대면 시장이 점점 커질 것이란 점이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키오스크 기기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0년 176억3000만달러(약 21조원)에서 2027년 339억9000만달러(약 4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는 노인들의 교육 필요성을 강조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앙정부가 어르신들 교육할 수 있는 제도를 다듬어 예산을 확보하고 지자체 등을 운영 주체로 삼아 디지털 정보화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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