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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영국 의회가 4일(현지시간) 브렉시트를 3개월 연장하는 내용의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EU 탈퇴) 방지 법안’을 가결했다. “10월 31일 무조건 강행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멈춰 세운 것이다.
영국 의회는 또 존슨 총리가 회심의 카드로 내놓은 조기 총선마저 무산시켰다. 향후 상원에서 방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마저 사전에 차단시켰다. 존슨 총리가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거의 없어진 것이다. 노딜 브렉시트를 주장하던 존슨 총리는 만신창이가 됐다. 그의 리더십이 시작하자 마자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존슨, 의회에 3연패…리더십 송두리째 ‘흔들’
영국 하원은 이날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329표, 반대 300표로 가결됐다. 영국이 EU와 10월 19일까지 합의하지 못할 경우, 내년 1월 말까지 브렉시트를 3개월 연장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EU와의 합의 결과와 상관없이 10월 31일 무조건 EU를 떠나겠다고 공언해 온 존슨 총리의 정책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의회가 브렉시트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노딜 브렉시트 방지 법안이 통과되자 존슨 총리는 “의회가 브렉시트 협상의 걸림돌”이라며 10월 15일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내용의 동의안을 즉각 상정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동의안이 통과되려면 투표권을 가진 하원 의원 중 3분의 2, 즉, 434표가 필요하다. 하지만 찬성표는 298표(반대 56표)에 그쳤다. 턱없이 부족했다. CNN은 “존슨 총리의 도박이 실패했다. 그는 궁지에 몰렸다”고 전했다.
존슨 총리는 전날부터 이날까지 의회에서 가진 표결에서 내리 3연패를 당했다. 특히 전날에는 보수당 내부 의원들조차 21명이 야당 쪽에 표를 던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보수당의 중진인 필립 리 의원은 존슨 총리가 “힘을 실어달라”고 연설하는 와중에 당을 탈퇴했다. 보수당 연정의 과반 의석은 무너셨다. 존슨 총리는 반대표를 던진 보수당 의원 21명을 제명시켰는데, 당내 온건파 의원들은 의원들을 다시 데려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존슨 총리의 리더십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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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총리에게 남은 카드는 많지 않다. 존슨 총리는 필리버스터를 쓰려고 했다. 시간을 끌어 오는 9일 의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영국 상원 의원들은 이날 심야까지 토론한 끝에 노딜 브렉시트 방지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의사일정안을 가결했다. 상원은 6일 오후 5시까지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을 처리해 하원으로 송부하기로 했다. 하원은 의회를 문을 닫기 직전인 오는 9일에 최종 표결이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남은 카드는 조기 총선을 다시 추진하는 방법뿐이다. 존슨 총리는 이날 표결 이후에도 “조기 총선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노딜 브렉시트 방지 법안이 완전히 제정된 뒤에 조기 총선 논의에 응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다만, EU는 영국과의 새로운 협상에 대한 부정적인 입징이다. 미나 안드리바 EU 대변인은 “영국 정치권 논의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지만, 우리 입장은 확고하다. 백스톱 조항이 북아일랜드와 EU 시장의 평화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해결책이다”라고 강조했다. 더 나은 대안이 없다면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기존에 합의한 내용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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