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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 관련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 수감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1일 도덕적 책임을 지고 일본 롯데홀딩스(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동안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았지만 이번 사임으로 쓰쿠다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가 됐다.
롯데홀딩스는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신 대표이사 사임 건을 승인했다.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신 회장이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이사회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이사 부회장’으로 변경됐다.
재계에선 일본 전문 경영인 단독체제로 전환한 롯데홀딩스가 한국롯데가 진행하는 신규 투자나 인수·합병(M&A) 건 등 사업 전반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거나 제동을 걸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한국롯데에 대한 일본롯데의 경영 간섭이 심화하면서 자칫 ‘종속 관계’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한일롯데의 정점에는 광윤사가 있다. 광윤사는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다. 그 아래 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롯데홀딩스의 지분율은 광윤사가 28.1%로 가장 많고 종업원지주회(27.8%), 5개 관계사(20.1%), 임원지주회(6%) 순이다. 신 회장의 지분율은 1.4%에 불과하다.
신 회장은 종업원지주회, 임원지주회 등의 지지로 대표 자리를 유지했고 이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촉발한 ‘형제의 난’ 수습에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일본롯데와 한국롯데 사이를 이어주는 호텔롯데의 상장도 사실상 무산됐다. 상장을 통해 한일 롯데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 했지만 신 회장의 구속에 이은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임으로 영향력이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롯데홀딩스(19.07%)를 비롯한 광윤사(5.45%), L투자회사(74.76%) 등 일본롯데는 한국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또 호텔롯데의 지분율이 많은 롯데알미늄, 롯데건설,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등 주력 계열사를 롯데지주 내로 끌어들이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관계자는 “‘원롯데’를 이끄는 수장의 역할을 해 온 신 회장의 사임으로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해 온 한일 양국 롯데의 협력 관계는 불가피하게 약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일본 롯데 경영진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신 전 부회장의 반격이 예상된다.
신 전 부회장은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 신 회장이 등기이사직 해임 안건과 함께 본인을 포함한 신규 이사 선임 안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 전 부회장은 2015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 해임되자 2015년8월과 2016년3월, 6월 그리고 지난해 6월 각각 임시주총과 정기주총을 열어 신 회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하려고 시도해왔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4일 광윤사 대표 명의로 ‘신동빈 회장에 대한 유죄판결과 징역형의 집행에 대해서’라는 입장 자료를 내고 “신동빈 회장을 즉시 해임해야 한다”며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