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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에 국회문턱 넘나‥힘실리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김인경 기자I 2021.05.10 16:44:32

국회 정무위 여야 의원들 공동 주최 공청회 열려
은성수 "디지털 선두 우리나라 입장에서 부끄러운 일"
금융위, 상반기 적극행정 중점과제로 뽑고 의지 표명
의료계 '심평원' 우려 여전…이달 정무위서 논의될듯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12년째 공회전 중인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올 상반기 다시 국회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의원들 모두 당을 막론하고 실손보험 청구가 간편해져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이대로 두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더 미루기 송구스럽다”…밀어붙이는 금융당국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병욱·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성일종·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이룸회관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더 이상 미루기에는 국민께 송구스럽고, 디지털 혁신의 선두에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6일 ‘올 상반기 적극 행정 중점과제’로 실손의료보험 청구를 전산으로 하는 방안을 5대 과제 중 하나로 뽑기도 했다. 통과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란 보험 가입자가 병원비를 계산할 때, 병원에 실손보험 청구를 요청한다면 병원이 전자문서를 전문기관에 보내고 이 전문기관이 보험사로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처럼 보험가입자가 일일이 서류를 받아 사진을 찍은 후 전송하거나 보험사에 우편·팩스 등을 이용해 직접 전달할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보험가입자들은 편하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2009년 이미 국민권익위원회가 직접 제2의 건강보험인 실손보험인데도, 청구 절차가 너무 불편하다며 제도개선 권고를 하기도 했다.

실제 절차가 불편해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는 많다. 최근 2년간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는 만 20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7.2%에 달했다.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이유로 △진료금액이 적어서(51.3%) △진료 당일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6.6%)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3.5%) 등이었다. 또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 시 전산 청구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78.6%였다.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구 절차 탓에 소비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면서 “전산화를 통해 손쉽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실증적으로 확인된다”라고 주장했다.

힘 싣는 시민단체…의료계는 여전히 ‘반대’

시민단체들도 힘을 싣고 나섰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실손보험 청구 한 번 할 때마다 청구서와 영수증, 진단서, 진료비 내역서 등 종이가 평균 4장 정도 발급돼 이를 계산하면 연간 약 4억장 이상의 종이가 낭비되는 상황”이라며 “소비자 편의성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정책 등도 고려할 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미뤄선 안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대 기류다. 실손보험이 개인 간 계약인데 병원에서 보험 청구를 대행하면 결국 병원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이사는 “실손보험은 환자와 보험사, 즉 민간 간의 계약인데도 병원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한다”면서 “민간 핀테크 업체 주도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사실 의료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건강보험심의평가원(심평원)이다. 전산화 방안을 보면 병원이 고객들의 보험비 청구를 위해 영수증 등을 각 보험사에 바로 보내는 게 아니라 전문기관을 중간에 끼게 된다. 현재 전문기관은 이미 병원·약국 등과의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심평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계는 심평원이 보험 청구를 명분 삼아 모은 데이터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의 가격 통제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비급여는 의사들의 가장 큰 수익원이다.

정무위 의원들은 실손보험 청구를 전산으로 하도록 하되, 심평원이 진료 정보를 받아도 데이터베이스로 쌓아두지 못하도록 하거나, 정보 사용을 제한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발의한 법안에 개인 의료 의료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처벌조항을 마련해 둔 상태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방안은 이달 국회 정무위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무위 관계자는 보험 가입자들의 권리를 고려하되 의료계의 우려 사항들을 최대한 법안에 담아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 전했다. 여야 간사 모두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인 만큼, 법안 통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의료계의 명분이 일리는 있지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바라는 소비자의 열망에 대비해 약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의료계의 우려를 해결할 수 있다면 무조건 반대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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