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는 물론 종교계와 시민단체, 정치권 등이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국익이 있다. 삼성이 투자 적기를 놓친다면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이 경쟁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고,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시장 매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침묵은 길어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부회장이 미국에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공식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삼성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대규모 미국내 투자는 다양한 분야의 한미 협상에서도 좋은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부재가 회사의 투자 결정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없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일상적인 경영은 최고경영자(CEO)들이 할 수 있다. 이미 예정돼 있는 투자를 집행한다든지 매년 하는 고용을 예년 수준으로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CEO는 먼 미래를 내다본 투자 결정은 하기가 어렵다. 자칫 사업이 잘못됐을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꺼릴 수밖에 없는 게 전문경영인의 속성이다. 반도체 공장 증설이나 기업 인수합병(M&A) 등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총수의 몫이란 얘기다.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 총수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3년 며칠밤을 고심한 끝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최태원 SK 회장이 2012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 그리고 구광모 LG 회장이 최근 휴대폰 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 등은 총수만 할 수 있는 결단이다. 지금의 이 부회장 역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타이밍이지만, 구속 수감돼 있는 상태에서 촉박한 면회 시간에 경영 지시까지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취임 4주년 특별 연설에서 이 부회장 사면론에 대해 “지금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서 우리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더욱 높여나가야 하는 게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형평성, 과거 선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국가전략산업으로 전방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한 특별연설 내용대로 문 대통령이 오직 국익을 고려한 결단을 내리길 경제계는 기대하고 있다. 특히 오는 21일 예정돼 있는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방미길에 이 부회장을 동행시킬 수 있다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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