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망 전날 좋아하던 과자도 안 먹어”…어린이집 원장 눈물

박순엽 기자I 2021.02.17 13:30:55

서울남부지법, 17일 정인양 양부모 2차 공판 열려
어린이집 원장 증인으로 출석…“수차례 상처 발견”
“신고했지만, 분리 안 돼”…정인양 떠올리며 눈물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지난해 입양 이후 지속적으로 양부모의 학대를 당해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입양 전 본명)양이 입양 초기부터 폭행당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담긴 증언이 나왔다. 또 정인양이 너무 야위어 건강이 걱정돼 병원에 데려갔던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의 양어머니에게 오히려 말도 없이 병원에 데려갔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입양한 생후 16개월 된 딸을 학대 치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모씨가 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인양 몸에서 수차례 상처 발견”…어린이집 원장 출석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신혁재)는 17일 살인, 아동복지법상 상습아동학대·아동유기·방임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어머니 장모씨와 아동유기·방임,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양아버지 안모씨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은 지난달 13일 열린 1차 공판에 이은 2차 공판으로, 이날 공판부터 증인 신문 등 재판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날 오전 공판엔 정인양이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 A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A씨는 입양 직후인 지난해 3월부터 정인양의 몸에서 상처를 수차례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정인이가 입학했던 3월 당시엔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었고 쾌활했다”면서도 “보통 아이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상처가 발견되는 데 반해 정인이는 2주에 한 번씩 상처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 장씨에게 정인양 몸에 생긴 상처의 이유를 물었지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답을 회피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상처 원인을 잘 알고 있는 대부분 부모 사례와 달랐다는 것이다. A씨는 장씨로부터 “‘베이비 마사지’ 때문에 멍이 든 것 같다”는 설명을 한 차례 들었지만, 마사지를 받은 것치곤 멍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해 5월 어린이집 (정인이) 담임교사가 불러 확인했더니 평소엔 얼굴에만 보이던 상처가 배와 다리에도 있어서 많이 놀랐다”며 “한참 고민하다가 다른 원장 선생님과 상의한 뒤 신고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실제로 지난해 5월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 신고했다. 어린이집 교사로 10년, 원장으로 6년 일했던 A씨의 첫 신고였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2차 공판이 열리는 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입양부 A씨가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거짓말까지 하며 출석 요구…두 달 사이 기아처럼 말라”

신고 이후에도 같은 해 7월까지 해당 어린이집을 다니던 정인양은 7월 하순부터 약 두 달 간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았다. 그 기간 양부모의 친딸인 정인양 언니는 정상적으로 등원했다. A씨는 “장씨가 처음엔 정인이가 열이 나고 아파서 등원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정인양이 걱정됐던 A씨는 ‘계속 결석하면 구청에 보고 의무가 있다’는 식의 거짓말로 장씨에게 정인양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또 한 차례 더 학대 의심 신고를 당했던 장씨는 A씨에게 “입양아라는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싫어서 바깥에 노출되는 게 싫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두 달 만인 지난해 9월에야 정인양을 다시 봤고, 당시 정인양이 ‘기아처럼 몸이 마른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A씨는 “정인이 겨드랑이를 만져봤는데, 가죽이 늘어나듯 겨드랑이 피부가 늘어났다”며 “외모뿐만 아니라 허벅지도 바들바들 떨어 걷지도 못해 어린이집 생활을 할 수 있지 걱정될 수준이었다”고 털어놓았다.

A씨는 결국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소아과 의사는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의 예상과 달리 정인양은 양부모로부터 분리 조치되지 않았고, 오히려 A씨는 장씨로부터 말도 없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는 지적을 들었다고 말했다. 양부인 안모씨도 당시 A씨에게 “부모한테 먼저 연락을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인이 사건’ 피의자 입양부모에 대한 2차 공판기일인 1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모든 걸 포기한 모습”…사망 전날 생각에 울먹

정인양은 숨을 거두기 전날인 지난해 10월 12일에도 어린이집에 등원했지만,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 비춰보면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정인양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고, 평소 좋아하는 과자를 줘도 입에 넣지 않았다. A씨는 “그날 모습은 모든 걸 포기한 모습이었다”며 “그날이 마지막이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였다.

A씨는 이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간 건 어느 부모라도 화를 낼 일 아니냐”는 변호인 질문에 “아무 허락도 받지 않고 병원에 아이를 데려간 것에 대해선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정인이 같은 경우는 특수한 경우라서 제가 직접 데리고 갔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공판이 열린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앞은 이른 아침부터 정인양 양부모에 대한 법원의 엄벌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40여명은 이날 오전 6시쯤부터 파란색 우비를 입은 채 ‘정인이를 기억해주세요’, ‘양부모 살인죄 사형’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고, 1인 시위를 하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법원 앞 시위에 나선 협회 측은 양부모가 정인양을 고의적으로 사망케 했다며 살인 혐의를 적용해 이들을 법정 최고형에 처해야 한다고 법원에 촉구했다. 협회는 중국,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4444건의 진정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일부 중국인과 중국 동포들은 법원 앞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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