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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이 꺼지기까지…50개월짜리 라임판 인생극장

전재욱 기자I 2020.02.14 16:35:16

2015년 출범 신생사, 2017년 무역금융 출시로 주목
2018년 6월, 기준가 산정연기 기로에서 수익률 조작
부실을 정상과 섞어…대증요법 의존하며 연명했지만
운용 실패·임원 불법행위 겹쳐 업계에서 퇴장 수순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라임자산운용이 업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17년 5월 무역금융 펀드를 출시하면서부터다. 무역 거래 과정에 자금을 대고 나중에 회수해 수익을 내는 상품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생경한 운용 기법이었다. 당시를 지켜본 헤지펀드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국내 첫 무역금융 펀드 상품일 것”이라며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품인 탓에 선뜻 손내미는 업체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대신증권 라임펀드 환매 피해자 모임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라임 펀드 환매 보상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신생 운용사의 과감한 등장

라임자산운용은 이렇듯 모두의 예상을 깨고무역금융펀드로 자산운용업계에서 급부상했다. 2015년 12월 전문사모 집합투자업을 인가받은 지 2년이 채 안 된(17개월) 앳된 운용사에 불과했기에 더 파격이었다. 신한금융투자는 이런 라임자산운용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밀어줬다. 무역금융펀드는 미국의 IIG펀드 등에 투자를 단행했다.

펀드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된 것은 1년여만인 2018년 6월이다. IIG 펀드의 기준가 산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이 펀드에 투자한 무역금융펀드의 수익률도 집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해 11월까지 IIG 펀드의 수익률은 매월 0.45%씩 상승했다. 거짓이었다. 라임자산운용은 이런 사실을 투자자에게 알리는 대신 수익률을 조작을 택했다. 라임과 신금투가 IIG 관련 영문을 알게 된 시점은 그해 11월17일이다. IIG는 신한금투에 ‘IIG 펀드의 부실과 청산 절차 개시’ 사실을 이메일로 알리면서부터다.

그때가 기로였다. 라임은 무역금융 펀드에서 청구된 500억원 규모의 환매 대금을 마련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러나 IIG펀드가 부실한 탓에, 환매에 응할 여력이 없었다. 라임은 펀드 부실을 선언하는 대신 감추기로 한다. 이를 위해 정상 펀드에 부실 펀드를 희석했다. 무역금융펀드 5개를 통합해 모자(母子)형 펀드 구조를 들여왔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플루토 TF(모펀드)다.

◇ 부실과 정상의 희석에 취해

언 발에 눈 오줌은 예상대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IIG는 작년 1월 투자금의 50%가 손실 났고, 또 다른 무역금융펀드 BAF는 한달뒤인 작년 2월 만기 6년짜리 폐쇄형으로 전환됐다. 애초 개방형으로 투자자를 받았기에 환매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라임은 이 사실조차 감추고 환매에 응하고자 자산을 임의로 처분하기에 이른다. 이를 위해 무역금융펀드를 싱가포르 R사에 장부가로 처분해 자금을 확보하고, 대가로 약속어음을 받았다. 특경가법상 사기 혐의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금감원이 라임을 수술대에 올린 시기는 지난해 6월이다. 대표 모펀드를 중심으로 펀드 순환 거래가 일어나는 정황을 포착하면서다. 증권사 TRS 거래를 매개로 운용에 탈이 나려는 조짐도 이때 처음 감지했다. 라임문제가 수면으로 불거지고 언론과 금융당국의 검증이 시작됐다. 운용사와 판매사가 차례로 검사를 받았다. 라임자산운용은 지난해 8월과 9월 각각 열흘 안팎으로 두 차례 검사를 받았다. 그러는 새 라임자산운용에서 펀드를 얻어간 자산운용사 2곳(라움, 포트코리아)에 대한 검사도 이뤄졌다. 판매사 검차 차원에서 신한금융투자(10~12월)와 KB증권(10월)도 각각 금감원 검사역에게 사무실을 내보여야 했다.

◇ 임직원 사익취한 새 허물어진 펀드

그러나 라임자산운용 펀드는 금감원 검사보다 더 빠르게 허물어져 갔다. 라임운용은 작년 10월1일 모펀드 3종의 환매 중단을 공식으로 선언했다. 플루토 FI D1호, 테티스 2호, 플루토 TF 1호는 그날부로 현재까지 자금이 동결돼 있다. 지난달에는 크레딧 인슈어드 무역금융펀드를 추가로 환매 중단했다. 비유동성 자산을 가지고 개방형으로 판매한 터라 꼬박꼬박 돌아오는 만기에 밀려드는 환매 신청을 감당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자산을 묶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라임사태는 운용 실패 탓만으로 커진 게 아니다. 펀드의 손실을 다른 펀드로 전염시킨 것뿐 아니라 펀드끼리 투자를 주고받는 `자전거래`로 환매에 대응했다. 이를 위해 애먼 자산운용사를 끌어들여 공범으로 만들었다. 사건의 주범으로 꼽히는 라임운용 전 부사장 이종필씨는 사익을 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운용 과정에서 탐나는 자산을 발견하자, 임직원 전용 펀드를 만들어 투자했다. 금감원은 “이렇게 거둔 수익이 수 백억원”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는 새 펀드는 하릴없이 허물어졌다. 라임운용이 그릇된 선택을 거듭하고, 임직원이 사익을 챙긴 결과였다. 라임자산운용 자료를 보면, 플루토 FI D1호와 테티스 2호 등 모펀드 2개에 달린 자펀드 120종 가운데 3종은 전액 손실이 확정됐다. 2018년 6월, 수익률을 조작한 무역금융 펀드는 50%가량의 손실이 예상된다. 2015년 12월 출범한 지 50개월, 2017년 5월 업계의 총아로 등장한 지 31개월 만에 라임운용의 활약은 막을 내렸다. 라임의 말로는 사건의 전말을 검사한 금감원 관계자의 14일 언급에서 읽을 수 있다. “라임펀드 이관이요? 환매 중지된 펀드를 받아가려는 운용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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