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생생확대경]재원 확보는 뒷전인 고교무상교육

신하영 기자I 2019.04.15 13:38:08
지난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교 무상교육 시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당·정·청 협의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김연명 사회수석 등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 1년간 내야 하는 160만원을 안내도 되는 건가요?” 자주 가는 단골 미용실 사장님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 아들이 올해 고2인데 내년부터 수업료·교과서대금·학교운영지원비를 정말 내지 않아도 되는지 여러 차례 확인한 뒤 반가워했다.

정부가 발표한 고교무상교육 실현방안에 따르면 올해 2학기 고3부터 단계적으로 무상교육이 확대된다. 2021년에는 고교 전 학년 126만명이 혜택을 받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 교육비의 전국 평균은 1인당 158만2000원으로 사립대 등록금(743만원)의 20% 수준이다. 하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중소기업직원 등 그간 고교 교육비 지원에서 사각지대에 놓였던 서민층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수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공무원의 경우 대부분 직장에서 자녀의 고교 교육비를 지원받지만 이들은 이런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재원 마련을 놓고 논란이 적지 않다. 대체로 “동의하지만 안정적 재원 조달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도입했다”는 의견이 많다. 2016년 누리과정(만3~5세 무상보육) 사태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누리과정 예산 부담을 놓고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정부는 만 3~5세 무상보육을 책임지겠다고 한 뒤 예산부담을 시도교육청에 미뤘다. 교육감들도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정부와 대치하면서 보육대란을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2016년 때와는 다른 점들이 엿보인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예산안에서 누리과정 지원액은 단 한 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교육부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조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예산당국이 이를 전액 삭감한 까닭이다. 반면 이번 고교무상교육 실현방안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소요예산 2조원 중 정부가 9644억원을 부담한다. 이는 전체 예산의 47.5%에 달하는 규모로 정부부담액이 0원이었던 누리과정 사태 때와는 차이가 크다.

시도교육청의 형편도 그 때보다는 한결 여유롭다. 2016년 누리과정 사태의 발단이 됐던 2015년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 규모는 39조원에 불과했다. 교부금은 정부가 거둔 내국세의 20.46%를 교육예산으로 쓰도록 교육청에 나눠주는 돈이다. 지금은 세수 증가에 힘입어 2018년 교부금 규모는 52조4500억원을 넘었으며 올해는 6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시도교육감들이 정부의 고교무상교육 실현방안을 일단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2025년 이후다. 정부의 고교무상교육 실현방안에서는 2025년 이후의 재정 분담방안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당장 교부금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교부금율을 올리는 방법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는 9466억원은 다른 곳에 써야 할 돈을 일단 고교무상교육으로 돌려야 마련할 수 있다. 몇 년 시행하고 말 제도가 아닌데 지속적으로 교육청에 부담을 지울 수 없다.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학생수 감소추세를 감안할 때 나중에 다시 내리기도 힘든 교부금율을 무턱대고 올리기 주저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옳든지 간에 재원 확보가 어려울 경우 고교무상교육의 지속 가능성은 위협받게 된다.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또 다시 충돌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바로 지금이 2025년 이후의 무상교육 재원 확보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