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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심리학자가 보는 게임은? “두뇌 움직이는 도구, 순기능 더 많아”

김정유 기자I 2023.10.12 15:24:51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
두뇌 피드백을 주는 게임의 역할 주목
게임중독으로 칼부림?, 마녀사냥 지적
웹진 발간 등 게임문화 정착 위해 노력
명칭도 ‘피드백 사이언스’로 바꿨으면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하도록 설계된 유기체인데, ‘게임’은 육체적인 행동반경이 제한된 현대사회에서 뇌를 계속 움직이게 해주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단순히 최근의 ‘칼부림 사태’를 게임과 연결짓는 건 본질에서 벗어난 심각한 일반화, 단순화 오류 중 하나죠.”

지난달 27일 서울 방배동 게임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이사장은 “게임 자체가 질병이 되기엔 이미 우리 사회가 너무 게임화 됐다. 사회가 다변화하는 시점에서 게임의 장점을 무시한 채 부정적인 부분만 내세워 없애버리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사진=게임문화재단)
‘칼부림 사태=게임’ 호도는 일종의 ‘마녀사냥’

게임문화재단은 건전한 게임문화 기반 조성을 위해 2008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2018년부터 재단에 몸담은 김 이사장은 고려대에서 심리학 학사·석사 졸업을 하고, 미국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딴 국가 대표급 인지심리학자 중 한 명이다.

김 이사장은 게임과 심리학이 ‘가장 밀접한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어떤 것에 몰입하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는지, 또 어떤 능력이 향상되는지를 주로 본다”며 “인간의 두뇌가 움직이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피드백’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사실 이것은 ‘게임’의 구조와 똑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사회에서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부여해 어떤 행동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게임화’(게이미피케이션)이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게임에 대한 인식은 저조하다. 한 예로 올해 여름 국내에서 발생했던 ‘칼부림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게임 중독’과 연결짓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사회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이사장은 “다면적으로 사회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데, 언제나 사람들은 가장 찾기 쉬운 원인을 잡고 몰아간다. 인지심리학자로서 분당 칼부림 사건은 더운 날씨가 영향이 있다고 본다”며 “38도만 넘어가면 인간은 이성적인 생각의 40%가 날아간다. 하지만, 날씨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 때문에 보다 접근하기 만만한 ‘게임’을 지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 중독을 원인으로 모는 건,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가깝다”며 “게임은 젊은 산업인데, 산업의 역사가 짧으면 더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찌보면 산업의 역사가 짧은 게임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통과 의례”라고 덧붙였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 긍정 요소 부각해야, 웹진 등으로 문화설파

김 이사장에 따르면 인간은 구조상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게임은 오히려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모든 인간은 깨어 있을 때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이런 측면에서 게임은 육체적인 행동 반경이 제한된 현대사회에서 뇌를 움직이게끔 하는 거의 유일한 도구나 마찬가지”라며 “게임에 몰입해 현실에서 사고를 일으킬 것이란 부정적 시선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비슷한 이유로 줄곧 비판을 받았던 TV를 봐라. 현재 TV시청을 두고 현실 속 사건이나 사고와 연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게임문화재단은 게임에 대한 인식과 문화적 정착을 위해 2년째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을 발간하고 있다. 크래프톤(259960)이 후원 중인 ‘게임 제너레이션’은 독자들에게 게임에 대한 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목표다. 최근 독자들의 호응도 나타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게임 제너레이션’을 접한 한 초등학교 교사가 수업에 게이미피케이션을 도입했는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며 “앞으로는 다국어 버전으로 웹진을 구성해 일본, 중국 등 우선 아시아 문화권과 교류하고, 한국에선 20~30대 중심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게임문화를 설파하고 싶다”고 했다.

게임이란 단어를 세분화해 다른 용어로 지칭했으면 좋겠다는 제언도 남겼다. 김 이사장은 “현재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아케이드, 슈팅 등 장르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세분화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지칭하는 시도들이 분명히 나올거다. 이용자가 추구하는 밸류(가치)나 감정 위주의 분류가 이뤄지면 사회적으로도 흡수가 빨리 될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게임을 지칭하는 용어도 ‘피드백 사이언스’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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