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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번 중 대형 선박 화재 진압한 소방관[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21)

이연호 기자I 2024.03.29 17:54:44

제주서부소방서 김재환 소방관, 2022년 7월 11일 한림항 선박 화재 출동
3척 동시에 붙은 큰불로 2시간 만에 탈진…"동료들 덕분에 끝까지 버텨"
'믿음직한 동료' 되기 위해 도전한 최강소방관 대회서 1위

[편집자주]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가량 숨 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지난해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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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7월 11일 발생한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 선박 화재 당시 김재환 소방관 등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재환 소방관 제공.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지난 2022년 7월 11일 오전 10시께. 제주소방안전본부 서부소방서 소속 김재환(30) 소방관은 비번이라 집에서 외출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방서에서 문자가 왔다. 비상 대응 1단계 발령이었다. ‘큰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한림항을 가득 메웠다. 선박 3대에 동시에 화재가 확산됐다’는 내용이었다. 김 소방관은 서둘러 소방서로 가 장비를 챙겨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아수라장이었다. 그해 1월 임용돼 갓 6개월 된 신입 소방관이었던 김 소방관이 본 가장 큰 불이었다. 김 소방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한림항에 밧줄로 묶여 한데 정박 중이던 배 세 척에서 동시에 불이 났다”며 “이미 도착 당시 불이 너무나 커진 상태였기에 선박으로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소방관은 마음을 다잡았다. 든든한 선배 소방관들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불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산소통을 2~3차례 교체하며 불을 끄기 시작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김 소방관은 한계를 느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깐 숨을 돌리는 순간에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며 “그러나 그 순간에도 현장에서 쉴 틈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그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지나자 불길은 잦아드는 기미가 보였다. 그때부턴 선박에 직접 들어가 잔해물들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불은 화재 발생 7시간여 만에 완전히 진압됐다. 김 소방관은 “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화재 현장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함께하며 의지가 돼 준 동료들 덕분이었다”며 “지칠 때마다 나보다 한 번이라도 더 움직여 주는 동료들을 보고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동료가 돼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김 소방관은 그때의 대형 화재를 계기로 ‘최강소방관’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최강소방관’은 해마다 열리는 소방기술경연대회의 한 분야로 호스말이, 포스 빔 타격·장애물 통과, 중량물 들고 타워 오르기, 15층 계단 오르기 등의 종목을 두고 기량을 겨뤄 입상한 소방관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김 소방관은 “그때의 화재는 소방관으로서의 제 마음가짐을 바꿔 놨다. 믿음직했던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 큰불 앞에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저 역시 누군가에게 믿음직한 동료가 되기 위해 제 자신을 단련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겨 최강소방관에 도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23일 서귀포시 대정읍 낚시객 고립 사고 당시 김재환 소방관 등 소방관들이 수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재환 소방관.
김 소방관은 최강소방관에 도전하기로 맘 먹고 나서부터 매일 5km가 넘는 거리를 뛰어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빠짐없이 출퇴근길을 뛰었고, 퇴근하면 또 산을 뛰었다.

그는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는 말을 되새기며 소방관으로서의 나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었다”고 돌아봤다. 결국 약 9개월의 시간이 지나 지난해 4월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그는 도(道) 최강소방관 1위 자리에 올랐다. 그 기세를 바탕으로 같은 해 4월엔 화재대응능력 2급을, 5월엔 인명구조사 2급을 취득하기도 했다.

김 소방관은 “여전히 많은 동료들에 비해 부족하고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정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든든한 소방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재환 소방관.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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