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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발암물질 고혈압약, 정말 유해한가

강경훈 기자I 2018.07.09 14:04:20

식약처, 판매금지 품목 219개서 128개로 줄어
발암물질 NDMA, 구운 삼겹살보다 안전해
제조과정 변경하면서 불순물 섞인 것으로 추측
대체 제제 충분한 상황, 혼란 불필요

서울시내 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고 있는 시민(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유럽에서 중국산 혈압약 원료의약품에서 발암성이 의심되는 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5일 중국 ‘제지앙 화하이’가 만든 ‘발사르탄’에서 발암의심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발견, 해당 품목에 대해 회수조치를 내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확인한 뒤 7일 국내에서 해당 물질을 쓰도록 허가 받은 82개사 총 219개의 혈압약에 대해 판매·제조 중지 명령을 내렸다. 식약처가 현재까지 안전성에 있어 문제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후 식약처는 해당 제조사에 대해 현장조사를 진행해 9일 오전 8시 현재 해당 원료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한 91개 품목에 대해 판매금지조치를 해제했다. 이로써 판매금지조치 품목은 128개로 줄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 현장조사를 하지 않은 일부 품목은 판매금지조치를 유지하고 있다”며 “현장조사를 마무리하면 해제되는 품목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NDMA는 위험한 물질인가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2A’군으로 정한 발암위험 물질이다. 2A군은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에 대한 증거는 충분히 밝혀졌지만, 사람을 대상으로는 암을 일으킬 수 있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뜻이다. 소·돼지 같은 붉은 고기나 원두커피를 로스팅할 때 나오는 ‘아크릴아마이드’도 2A군에 속한다. 참고로 담배를 피우거나 햄·소시지 등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벤조피렌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명확, IARC가 1군으로 정한 발암물질이다. 즉, NDMA는 구운 삼겹살보다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셈이다.

◇해당 약을 오래 먹은 사람은 이상 없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가 답이다. EMA에서도 ‘NDMA가 검출이 돼 회수한다’고만 했을 뿐, 어느 약에서 얼마나 검출됐는지는 이제부터 밝혀야 할 내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지속된 문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생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의약품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원료의약품을 들여오면 생산 전에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이번에 검출된 NDMA는 이 테스트 과정에서 발견됐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이런 테스트는 원료의약품이 들어올 때마다 진행한다”며 “예전부터 지속했던 문제라면 이전에 이미 밝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EMA는 제지앙 화하이가 최근 발사르탄 제조공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NDMA가 섞인 것으로 추측한다. 발사르탄 속 NDMA가 얼마나 유해한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해당 원료의약품을 쓴 것으로 확인된 제품들을 대상으로 유해성 평가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는 EMA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번 논란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FDA는 안전성에 중대한 영향이 밝혀져야만 대응을 한다”며 “안전성과 관련해 큰 이슈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NDMA 들어간 혈압약 얼마나 많나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수입·제조된 발사르탄 원료의약품 양은 48만 4682㎏이다. 이중 이번에 문제가 된 제지앙 화아이의 발사르탄은 1만 3770㎏이 수입됐다. 전체 발사르탄 물량의 2.8%에 해당한다. 국내에 허가된 발사르탄 제제는 총 571개다. 단순히 계산하면 국내 발사르탄 제제 중 22%(128개)가 문제가 된 중국산 원료의약품을 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원료를 한 곳에서만 받지 않는다.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약처가 중국산 원료의약품을 쓰도록 허가받은 업체를 현장조사하는 과정에서 허가만 받고 사용하지 않은 품목을 확인, 판매금지 품목 수가 처음 발표(219개)보다 91개나 줄었다. 해당 원료를 수입한 제약사 관계자는 “특허 해제 초기에만 잠깐 수입을 했을 뿐 현재는 쓰지 않고 있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처방 등 향후 대응은

처방받은 약 중에 중국산 원료가 들어간 것으로 확인된 제품이 있다면 의사와 상의해 문제가 없는 발사르탄이나 다른 성분의 약으로 약을 바꾸면 된다. 이날 현재 판매금지 조치 품목은 128개다. 이를 제외하면 443개의 발사르탄 성분의 약은 쓸 수 있다는 의미다. 발사르탄과 같은 효과를 내는 성분은 발사르탄 외에도 로잘탄과 텔미살탄, 올메살탄, 피마살탄 등이 있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처방을 받아 놓은 약의 처리는 앞으로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수가와도 관련이 있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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