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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석유에 노숙자 바지사장…'먹튀 주유소' 칼 뺐다

조용석 기자I 2023.12.11 18:52:25

국세청, 35개 유류업체 조사…350억 규모 불법유류 적발
바지사장 적발되자 같은 장소서 기초수급자 명의로 재영업
석관원과 공조해 현장유류 압류…자산관리공사 통해 매각
“먹튀주유소 등에 강력 대응 시그널…불법유류 대응 강화”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불법 면세유나 가짜석유를 판매한 뒤 세금을 내지않고 폐업하는 이른바 ‘먹튀주유소’ 일당이 적발됐다. 이들은 노숙자, 기초생활수급자를 바지사장으로 바꿔가며 대담하게 단속을 피했고, 급유대행업체와 외항선박이 몰래 빼돌린 100억원 상당의 면세유를 먹튀주유소에 버젓이 유통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11일 국세청은 지난 9~12월 먹튀주유소 35개 업체를 조사해 304억원 규모의 무자료 유류 및 44억원 규모의 가짜석유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또 처음으로 먹튀주유소 현장유류를 한국석유관리원(석관원) 등과 함께 압류해 2억원 상당의 조세채권도 확보했다.

먹튀주유소란 면세유나 등유 등을 무자료 매입해 가짜석유를 제조·유통하는 방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수법을 말한다. 탈세 행위라는 점 외에도 적합한 자동차용 기름이 아니기에 차량 손상 및 국민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 도입 후 많은 지하경제가 양성화 됐으나, 단기간 영업하고 무단 폐업하는 먹튀주유소는 여전히 잡기가 어려워 ‘마지막 지하경제’로도 불린다. 실제 최근 5년간 먹튀주유소 400건 적발돼 786억원의 부과됐으나, 세금징수 실적은 3억원에 불과했다.

먼저 국세청은 19개 먹튀주유소를 운영하며 44억원 상당의 가짜석유 제조·판매를 주도한 판매대리점을 적발해 세금을 부과하고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이들은 자동차 경유에 무자료 선박유, 값싼 등유를 혼합해 가짜석유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미 19개 먹튀주유소는 폐업 후 도주한 뒤였으나 실행위자인 이모씨는 덜미가 잡혀 세금이 부과됐다.

기초생활도 어려운 노숙자, 생활빈곤자를 돈으로 매수해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이들도 적발, 실행위자에게 매출누락(68억원)·무자료매입(54억원)에 대한 세금이 부과됐다. 이들은 노숙자 명의로 장사를 하다 적발되자 바로 폐업 후 기초생활수급자를 새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같은 장소에 다시 주유소를 재개업 하는 대담한 수법도 서슴지 않았다. 사건에 가담한 노숙자는 망가진 치아를 고치기 위해 월 120만원에 명의를 빌려줬다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위까지 잃었다.

또 선박에 들어가는 면세유 1만4000킬로리터(㎘)를 브로커를 통해 불법 매입해 판 판매대리점도 적발됐다. 브로커는 급유대행업체 및 외항선박과 짜고 선박용 면세유를 빼돌려 판매대리점에 넘겼고, 판매대리점은 면세유를 시세보다 30% 싼 가격에 무자료 매입(100억원 상당)한 뒤 이를 먹튀주유소 등에 판매하는 수법으로 불법수익을 올렸다.

국세청 및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들이 세종 전의면에서 영업하던 한 먹튀주유소에서 현장유류를 압류하고 있다. (자료 = 국세청 제공)
국세청은 단속 과정에서 석관원·경찰과 공조해 먹튀주유소 4곳의 현장유류 127㎘(탱크로리 6대, 시가 2억원 상당)을 첫 압류하는 성과도 냈다. 국세청은 유류 압류를 위해 지난 9월 석관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합동 단속 체계를 구축했으며, 압류 당일도 석관원에 유류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등 공조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 압류한 유류는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매각 후 국고에 환수할 예정이다.

국세청은 먹튀주유소 대응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사업자등록 검증 강화 △면세유 통합관리시스템 구축 △팩토링 계약 등 신종 탈세수법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내년 3월까지 13개 기관의 면세유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통합관리시스템이 개통되면 단속·적발이 용이해질 전망이다.

최재봉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가짜석유 제조·판매업자, 먹튀주유소 등에 강력 대응한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앞으로 대응체계 개선, 신종 조세회피 수법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불법유류 대응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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