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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구타, 제대하면 잊자고요?…"공소시효 10년입니다"

한광범 기자I 2021.09.07 16:39:43

지속 폭행·따돌림에 해군 일병 극단 선택
전역 후에도 공소시효 5~10년…처벌 사례 多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연한 군대 범죄
軍 구타·가혹 행위 비교적 입증도 수월

[이데일리 한광범 이용성 기자]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병 등으로부터 집단 따돌림과 구타, 폭언을 겪은 병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11월 입대해 지난 2월 강감찬함에 배속 받은 고(故) 정모 일병은 부친상으로 2주간 청원 휴가를 다녀온 뒤 선임병 등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꿀 빨고 있다”라며 정 일병을 따돌렸고, 업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밀쳐 넘어뜨려 폭행하거나 폭언과 욕설을 지속했다. 급기야 지난 3월 26일 정 일병이 자해 시도를 했음에도 함장은 ‘가해자들을 불러 사과 받는 자리를 갖자’고 제안하면서 2차 피해에 노출되기도 했다.

정 일병은 지난 4월 6일이 돼서야 하선할 수 있었고, 민간 병원에서 위탁 진료를 받으며 정신과에 입원했다. 이후 퇴원한 정 일병은 휴가 중이던 지난 6월 18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군인권센터가 밝힌 내용이다.

軍 가혹행위, 제대하면 잊자고 공소시효 10년입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정모 일병의 자살 건을 계기로 군대 내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군대 내 악습으로 치부하고 제대하면 끝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기 일쑤”라면서 “범죄 유형에 따라 공소시효가 각각 존재한다는 점에서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군 복무 시절 폭력으로 전역 후 처벌 받은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육군 예비역 A씨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후임병들에게 “이름표를 누르면 관등성명을 말하고, 태극기를 누르면 애국가를 부르고, 사단 마크를 누르면 사단가를 불러라”고 수차례 지시했다. 후임병들을 상대로 성행위를 묘사하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결국 그는 제대 후 위력행사가혹행위 혐의로 서울남부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해병대 예비역인 B씨도 마찬가지다. 백령도에서 복무하던 지난해 10~11월 이등병 엉덩이를 만지거나 속옷만 입기를 강요하고 수차례 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청주지법 영동지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다.

육군 예비역인 C씨는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이던 지난 2019년 10~12월 후임병 2명의 성기를 만지는 등 수차례 강제추행했다가 제대후 전주지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D씨의 경우 경기도 수원에서 군 복무 중 후임 병장 발가락을 수차례 핥았다가 제대 후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다.

법조계에선 이 같이 반복되는 군대 내 구타·가혹 행위, 성희롱 등의 배경으로 가해자들의 안일한 사고를 꼽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Deserter Pursuit·군무 이탈 체포조)’ 속 악마인 고참 황장수 병장은 전역 후, 자신의 군 복무 시절 후임병에 대한 구타·가혹 행위에 대해 “제대했잖아. 다 끝났잖아.”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군사법원법상 군 복무 시절 범죄는 최소 5년에서 최장 25년의 공소시효가 있기 때문에 제대 후에도 얼마든지 처벌될 수 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군대 내에서의 장난이니까 괜찮겠지’라는 그릇된 사고가 문제다. 군형법이 일반 형법에 비해 처벌이 강하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 구타·가혹 행위의 경우 목격자 등의 증거 확보가 비교적 쉬운 만큼 피해자 고소가 있을 경우 처벌이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군사법원법은 군형법상 범죄 행위의 법정형에 따라 공소시효를 달리하고 있다. 초병에 대한 폭행의 경우 공소시효는 최소 7년, 특수폭행이나 집단 폭행일 경우엔 10년에 달한다. 초병을 면전에서 모욕한 경우에도 5년이다.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는 추행의 경우 5년,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은 10년, 강간상해·치상은 15년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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