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자녀 둔 성전환자도 성별 정정 가능하다…대법 "제반사정 따져야"

하상렬 기자I 2022.11.24 14:49:24

정정 불허한 가정법원 결정, 대법 전합서 파기환송
"제반사정 고려 없이 미성년 자녀 있단 이유로 판단 안 돼"
"성전환자 기본권 보호·미성년 자녀 복리 조화 고려해야"
채권자 추심명령 때 채무자-제3채무자 소송 당사자 적격 판단도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미성년인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불허할 순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가정환경 등 기타 제반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대법원 제공)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24일 신청인 A씨가 제기한 등록부정정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11대 1 의견으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에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남성으로 출생신고된 A씨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 귀속감을 갖고 살다 2018년 11월 태국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이에 A씨는 가족관계등록부 성별란에 ‘남’으로 기록된 것을 ‘여’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는 등록부정정 신청을 냈다.

하급심인 서울가정법원은 A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A씨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A씨는 2012년 B씨와 혼인해 그 사이 미성년 자녀 2명을 두었다. 다만 A씨 부부는 2018년 6월 이혼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회규범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경우라면, 성전환자에 대해 법률적으로 출생시 성이 아닌 전환된 성을 그 사람의 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친권자와 미성년자인 자녀 사이의 특별한 신분관계와 미성년자인 자녀의 복리에 미치는 현저한 부정적인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은 달랐다.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 중,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에 한해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가정환경 등 기타 제반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판단해선 안된다는 것.

기존 대법원 판례는 미성년 자녀를 뒀을 경우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성별을 바꿀 수 없다고 봤다.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법원 예규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 만들어졌는데, 지침에는 ‘만 20세 이상에 미혼이며 자녀가 없는 경우’에만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이날 전원합의체는 “성전환자의 기본권의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같은 사정들을 실질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단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성년 자녀의 복리를 위해서라도 성전환된 부 또는 모와 미성년 자녀 사이에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살펴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성전환자의 기본권 보호와 미성년 자녀의 보호 및 복리와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법익의 균형을 위한 여러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채권자가 추심명령을 받은 경우 채무자는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 소송의 당사자 적격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판단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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