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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미국in]강연 한번에 10만달러 챙긴 옐런…재무장관行 암초

이준기 기자I 2021.01.05 12:30:00

연준의장 퇴임 후 수년간 월가 강연료 78억원 받아
진보단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 봉착할 것" 우려
화들짝 놀란 바이든 측 "이해 상충 문제 피해갈 것"
재무장관직 낙마 가능성?…"아직 크지 않아" 중론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만약 미국 재무장관이 대형은행과 프라이빗에쿼티(PE), 빅테크 등에서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인 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미 진보단체 ‘리볼빙 도어 프로젝트’)

오는 20일(현지시간)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에 지명된 제닛 옐런(사진)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암초를 만났다. 민주당·공화당 내 초당적 지지를 받아왔던 옐런이 최근 수년간 강연료 명목으로 720만달러(약 78억원)의 거금을 월가(街)로부터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재무장관은 월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 의장직을 겸직하는 만큼 이른바 ‘이해 상충’ 문제가 불거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내 진보진영이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내비치면서 의회 인준을 앞둔 옐런이 최대 시험대에 오른 양상이다.

진보단체 “옐런 강연내용 공개해야”

사실 연준을 포함해 전직 고위직들이 자신만의 경험·통찰력을 공유하는 강연을 통해 돈을 버는 건 흔한 일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과 민주당 대선후보를 역임한 힐러리 클린턴이 회당 28만달러(약 3억원)의 강연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재무장관은 세금·기후변화는 물론 관세·정부지출 등에 이르기까지 월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데 있다. 특히 금융안정성 위험에 대응하는 FSOC 팀을 이끌며 대형은행 감독을 진두지휘해야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옐런은 단 9차례의 강연으로만 미 최대은행인 시티에서 95만2200달러를 받았다. 강연에 나선 금융회사만 해도 자산운용사 핌코(PIMCO),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즈, 헤지펀드 운용사 시타델, BNP파리바, UBS, 크레딧스위스(CS), ING, 스탠다드차타드(SC) 등이 총망라됐다.

이는 ‘예런은 월가와 친밀하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종국엔 의회 인준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적잖다. 공직자 갈등을 추적하는 진보단체인 리볼빙도어 프로젝트는 “옐런이 (각종 강연에서) 시장에 대한 단순한 의견을 내놓은 건지, 아니면 로비나 정책 등의 조언을 한 건지를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사진=AFP
◇“이해 상충 피해가는 조처 취할 것”


사실 옐런을 바라보는 민주당 내 진보진영의 시각은 탐탁지 않았다. 이들은 월가에 강한 메스를 들이댈 수 있는 ‘월가(街) 저승사자’로 불렸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더 선호했다. 그나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인 2018년 2월 연준 의장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옐런이 퇴임 하루 전날 소위 ‘유령계좌’ 파문에 휩싸인 월가 4대 은행 중 한 곳인 웰스파고에 대해 자산 규모 동결명령, 총 4명의 이사진 교체 등 초강경 제재를 가한 것이 옐런 카드를 묵인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옐런과 월가 간 친분을 의심하는 일이 불거지면서 진보진영이 과연 옐런에 대한 지지를 이어갈지 의문이 생길법하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바이든 측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바이든 인수위원회 측 관계자는 CNN방송에 옐런의 강연은 언론이 중재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옐런은 강연에서 대(對)월가 규칙이 더 엄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렇지 않으면 미 경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언급해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옐런이 재무장관에 오를 경우 “이해 상충을 피하기 위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낙마 가능성 크지 않아” 중론

아직 옐런의 낙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고액 강연료는 일종의 관행인 데다, 다른 전직 연준 관리들과의 형평성도 고려돼야 한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준 의장을 지냈던 벤 버냉키의 경우 회당 25만달러까지 강연료를 받는 전례가 있다. 리서치업체 컴퍼스포인트의 아이작 볼탄스키 애널리스트는 “옐런이 인준 과정에서 고액 강연료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장관직에 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옐런은 전혀 잘못한 것이 없으며 여전히 확인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옐런 역시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섰다. 재무장관직에 오르면 90일 내 화이자·AT&T·듀폰 등 보유 중인 기업 지분을 매각하는 한편 개인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기업용 고객관리 소프트웨어(CRM) 세일즈포스(CRM)·프린시플파이낸셜·일본 투자은행 다이와증권 등과 관련된 일에서도 손을 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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