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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신고전문 유튜버 등장…학생들까지 "용돈 쪼개 후원"

한광범 기자I 2022.09.05 14:53:45

불법촬영 현장 뒤쫓아…가차 없이 경찰 신고
채널 개설 한달 만에 여성들 구독·후원 이어져
"불법촬영 뿌리뽑기 위해선 자발적 신고 필요"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불법촬영범을 잡는 유튜버가 등장했다. 여성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폭발적 지지를 받으며 구독자수를 꾸준히 늘려 나가고 있다.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감을 반영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튜브 채널 ‘감빵인도자’는 “불법촬영하는 성범죄자를 잡아 경찰에 넘기는 본격 불촬범(불법촬영범) 참교육 채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홍대입구나 놀이동산 등 인적이 많은 도심 지역을 다니며 여성을 몰래 촬영하는 남성을 뒤쫓아가 잡은 후 경찰에 인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불법촬영 신고를 받고 충돌한 경찰관이 불법촬영범의 휴대전화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유튜브 ‘감빵인도자’ 영상 갈무리)
업로드된 영상들에서 해당 유튜버는 10~20대 남성인 불법촬영범들의 범행 현장을 뒤쫓는다. 그는 범행 현장을 기록한 후 불법촬영범에게 다가가 ‘범행 목격 사실’을 고지한다. 영상 속 불법촬영범 대부분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한 번만 봐달라”고 간청하지만 해당 유튜버는 가차없이 경찰에 신고한다. 그리고 출동한 경찰에 범행 내용을 전달하고, 관련 진술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채널은 개설 한 달 만에 구독자 10만명을 넘어섰고 영상들의 조회수는 최대 40만회에 육박한 상황이다. 여성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영상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해당 유튜버가 유튜브로부터 영상 대부분에 대해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노란 딱지’가 붙었다고 호소하자 매 영상마다 구독자들의 응원 댓글과 함께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영상마다 이용자 후원 쌓여…“덕분에 덜 무섭다”

후원금액은 2000원에서 미화 50달러(약 6만8500원)까지 다양하다. 어린 학생들의 소액 후원도 줄을 잇는다. 자신을 학생이라고 밝힌 한 유튜브 이용자는 “늦은 시간에 학원 다녀야 해서 밤길 걸을 때마다 너무 무서웠는데 덕분에 덜 무섭다. 얼마 없는 용돈 쪼개서 소액이라도 후원한다”며 2000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시민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딸이 있다는 40대 남성 김모씨는 “해당 유튜브 채널을 보기 전까진 일상에서 여성들이 불법촬영에 이런 정도까지 노출돼 있는지 몰랐다”며 “범죄 예방 측면에서라도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김씨는 “공권력으로 불법촬영범들을 잡는데 물리적 한계가 있다면 결국 시민의 자발적 신고로라도 불법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오죽하면 여성들이 이토록 열렬히 응원하겠나”고 반문했다.

30대 여성 최모씨도 “불법촬영을 해도 걸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불법촬영범을 뒤쫓아가 ‘린치’(사적제재)를 가했다면 문제이지만, 단순히 경찰에 신고하는 수준이니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불법 주·정차 신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연도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적발 건수는 2015년 7623건, 2016년 5185건, 2017년 6465건, 2018년 5925건, 2019년 5762건, 2020년 5032건 등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불법촬영은 범죄’라는 인식이 퍼진 덕분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불법촬영 줄고 있다”지만…여성 공포는 여전

하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실제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범죄는 반복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엘리트 층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범행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17년엔 한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여성을 불법촬영했다가 현행범으로 적발돼 법복을 벗었다. 또 사법·행정·입법고시 3관왕으로 유명세를 탔던 한 인사는 2013년에 이어 2019년 불법촬영을 하다 현장에서 체포돼 결국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이다. 2019년엔 한 지상파 방송국 메인뉴스 앵커와 보도본부장을 역임한 기자가 지하철에서 불법촬영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연세대 의대생이 대학 여자화장실에서 몰래 촬영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수십 차례 여죄가 드러나 결국 구속기소됐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한 공채 출신 코미디언은 2020년 동료 코미디언들이 이용하는 방송국 여자화장실에 불법 촬영기기를 설치했다가 적발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불법촬영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로는 적발이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지하철 등에서 경찰이 수시로 불법촬영범 단속을 하고 있지만 단속에 물리적 한계가 뚜렷하다. 수도권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촬영범죄의 경우 경찰이 단속으로 적발하긴 쉽지 않은 만큼 시민의 적극적 신고가 필요하다”며 “해당 영상이 시민의 적극적 신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콘텐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자칫 조두순 출소 당시 행태처럼 일부 유튜버들 사이에서 ‘불법촬영범 잡기’가 또 다른 돈벌이로만 인식될까 우려된다”며 “불법촬영범죄 예방이라는 목적은 사라지고 돈벌이를 위한 자극적 콘텐츠만 남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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