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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째 '물고문' 당한 반구대 암각화 직접 보니…

양승준 기자I 2013.04.11 18:13:55

11일 울산 울주군 사연댐 현장 공개
문화재청·울산시 공방 재연
해법없이 보존 갈등만 커져

11일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문화재청이 진행한 현장설명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바위그림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문화재청).


[울산=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11일 오후 2시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사연댐. 보트를 타고 댐 상류로 10분여 물길을 가로질러 갔다. “여기가 울산 반구대 암각화다.” 사연댐 관리인이 대곡천 왼쪽 절벽을 가리키며 보트를 세웠다. 발을 디딜 수 있는 두 평 남짓의 공간에 내려 절벽을 마주했다.

익살스러운 호랑이 그림이 가장 먼저 돋을새김 됐다. 고래와 거북이도 보였다. 고래 사냥 모습과 고래의 뼈도 새겨져 있었다.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두 걸음 정도 떨어져 보면 더욱 선명해 보였다. 폭 10m 높이 4m의 바위에 선사시대에 새겨진 그림 10여개는 전문가 도움 없이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 반구대암각화보존전담팀에 따르면 이 바위에는 사슴·돼지 등 동물과 사람 등 300여점이 새겨져 있다. 특히 고래사냥 그림의 가치가 높다.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인류의 고래사냥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며 “기존 기록을 2000~3000년 앞당겨 기원전 3000년 전 고래사냥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선사인의 동물사냥 방식 등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새겨져 있어 역사적 의미가 높다는 설명이다. 1971년 발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됐다.

이 바위그림이 물에 잠겨 48년째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 인근에 사연댐이 1965년 건설된 후 물에 잠기면서 침식 작용으로 훼손됐다. 사연댐은 비가 내리는 양에 따라 최고 해발 60m까지 물이 찬다. 해발 53m 높이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강수량이 많으면 최장 1년 중 8개월 정도 물속에 잠긴다. 잠겼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면서 바위 표면이 갈라지고 색깔이 변했다. 첫 발견 시기와 비교하면 23.8%가 손상됐다. 바위그림은 멸실 위기에 놓였다. 문화재청이 바위 훼손 방지를 위해 현장에 실험기구를 설치해 조사 중이지만 근본적인 보존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으로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이날 현장을 찾아 “댐 건설 이전 단계로 돌아가야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문제는 보존 방법을 둘러싼 갈등이다. 문화재청은 댐 수위를 낮추는 보존 방법을 제안한 데 반해 울산시는 바위그림 앞 제방 건설안을 내놓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댐 수위를 낮추면 식수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는 게 울산시의 주장이다. 양측은 10년째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하는데 시의 주장대로 제방을 쌓으면 주변 환경이 훼손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울산시는 댐 수위를 낯추면 되레 유속이 최대 10배 정도 빨라져 바위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며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양측의 갈등 관계는 이날 현장에서도 드러났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문화재청이 울산시를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 섭섭하다”고 언성을 높였다. 또 “울산 유일의 청정수원인 사연댐의 기능이 사실상 사라진다면 울산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문화재청을 상대로 성토했다. 현장에는 반구대암각화보존전담팀장인 강경환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 등이 나와 있었다.

한편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 인근에 천전리 암각화(국보 147호)와 공룡 발자국 화석 등이 발견됐다는 것을 들어 이 일대를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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