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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밀누설 이어 재판개입도 무죄…'사법농단' 면죄부 줄잇나(종합)

남궁민관 기자I 2020.02.14 15:08:29

재판개입, 위헌적 행동이나 직권남용은 아냐
앞서 檢 수사정황 누설 현직 부장판사들도 무죄 선고
양승태 등 핵심 재판에 영향…`제 식구 감싸기` 비판 일어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영장 유출` 등으로 사법농단에 가담한 현직 판사들에 이어 재판 개입 등 혐의로 기소된 부장판사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 개입 자체는 부당한 행위이지만 직무권한(직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유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의혹 관련 사건 전체에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사법농단 관련 1심 재판에서 잇달아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法 “재판개입, 징계사유일뿐 직권남용 아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송인권)는 1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부장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기사화 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해 청와대 입장을 적극 반영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체포치상 사건, 프로야구 선수 도박 약식명령사건 등 다른 재판에도 개입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재판 개입 행위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인정했지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았다. 당시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임 부장판사에게 독자적인 사법행정권, 즉 재판과 관련해 남용할 직권이 없으므로 해당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재판부는 “각 재판에 관여한 행위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면서도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징계사유 등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3일 무죄를 선고 받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가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연이은 무죄에 양승태 재판 영향 주목…`제 식구 감싸기` 비난도

`재판 개입 자체가 곧 직권남용은 아니다`는 취지의 이번 판결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민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가 전날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에 무죄를 선고한 것 역시 변수로 꼽힌다.

이들은 지난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판사들을 겨냥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검찰 수사상황과 향후 계획을 수집해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들의 행위가 공무상 비밀누설이 아닌 사법행정 일환의 직무라는 취지로 판단했으며, 특히 사법농단 의혹 관련 내부 공모관계를 전체적으로 부정했다.

연이은 무죄 판단에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앞선 판사들에 대한 두 차례 1심 선고 뿐 아니라 지난달 13일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도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직권남용은 구체적으로 권한을 증명해야하기 때문에 통상 유죄 판결이 쉽지 않은 편”이라면서도 “판사 간 연공서열이 있더라도 서로 업무를 간섭하는 것은 직권에 따른 것이 아니라 판단한 것인데, 그야말로 형식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는 예상된 수순이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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