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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란 무엇인가…김설진·김보람·이경은의 대답은

장병호 기자I 2021.08.23 15:06:25

[리뷰]국립현대무용단 'HIP合'
현대무용 대표 안무가 3인 신작 무대
'일상' 움직임·반복되는 '노동' 춤으로
거리두기 장벽 깨부수는 '해방'의 몸짓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춤이란 무엇일까. 국립현대무용단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인 ‘힙합(HIP合)’이 무대에 올린 질문이다. 대답에 나선 이는 현대무용가 김설진, 김보람, 이경은. 세 사람이 신작을 통해 찾은 답은 일상, 노동, 그리고 해방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 ‘힙합’ 중 김설진 안무가의 ‘등장인물’ 공연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
김설진의 ‘등장인물’이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조명이 다 꺼진 어두운 무대 위, 풀벌레 소리가 극장을 조용히 채우자 4명의 무용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 트는 아침을 맞아 수탉의 울음 소리가 들리자 네 명의 무용수 또한 수탉이 된 듯 오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네 무용수의 몸짓은 스트리트 댄스처럼 흘러가다 영화 ‘라붐’과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되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밀레의 ‘이삭을 줍는 여인들’을 연상케 하는 등 시시각각으로 변화했다. 춤 같기도 하고, 마임 같기도 한 이들의 몸짓은 일상이 곧 춤임을 보여줬다.

이어진 무대는 이날치, 콜드플레이 등과의 협업으로 화제가 됐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 김보람의 신작 ‘춤이나 춤이나’였다.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음원을 바탕으로 춤의 원초적인 의미를 풀어낸 작품이다. 김보람을 비롯한 7명의 무용수는 우주인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의상을 입고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르는 각종 노동요에 맞춰 춤을 췄다.

국립현대무용단 ‘힙합’ 중 김보람 안무가의 ‘춤이나 춤이나’ 공연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
김보람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이날치,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영상에서 형형색색의 의상과 함께 재기발랄한 춤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날 무대는 재기발랄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무채색의 의상, 그리고 좀처럼 의미를 찾기 힘든 단조롭고 반복되는 소리 속에서 오직 춤만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았다. 무용가에게 춤은 곧 노동이자 삶임을 보여줬다.

공연의 대미는 이경은의 ‘브레이킹’이 장식했다. 제목은 ‘깨다’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BreAking’이라는 영문명으로 ‘B급이 만들어낸 A급 세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스트리트 댄서 3명을 포함한 8명의 무용수, 그리고 국악 록 밴드 잠비나이 리더 이일우 타악 연주자 이충우, 이준이 무대를 채웠다.

작품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마주한 8명의 무용수의 몸짓으로 시작했다. 장벽 안에 갇힌 이들은 춤을 추며 서로 부딪히고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여기에 무용수들이 직접 들고 나온 커다란 투명 아크릴판이 이들을 이중, 삼중으로 가두는 장벽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춤은 결국 장벽을 뛰어넘고, 끝내 그 장벽을 깨부셨다. 거리두기를 위해 쓰이는 아크릴판이 역설적으로 해방의 상징이 되는 장면에선 묘한 쾌감까지 느껴졌다.

국립현대무용단 ‘힙합’ 중 이경은 안무가의 ‘브레이킹’ 공연 장면(사진=국립현대무용단)
춤에 대한 국립현대무용단의 고민과 질문은 오는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남정호 예술감독의 안무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로 이어진다. 사회 속 경쟁의 문제를 현대무용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지난해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났고, 1년 만에 대면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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