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왜 '앉은뱅이 밀'로 부르나요"…농진청에 보낸 인권변호사의 편지

이소현 기자I 2021.04.19 13:03:41

김예원 장애인인권법센터 대표, 농촌진흥청장에 편지
"앉은뱅이, 지체장애인 비하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아"
토종 밀 품종뿐 아니라 가공품에서도 '앉은뱅이' 표현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일반 밀보다 키가 작다고 해서 ‘앉은뱅이 밀’로 불리는 토종 밀의 명칭이 장애인 비하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 주변에서 무심코 쓰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라 주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사진=이미지 투데이)
김예원 장애인인권법센터 대표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앉은뱅이 밀 품종 이름 변경을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제목으로 농촌진흥청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앉은뱅이 밀이라는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달라”며 “더 귀엽고 더 건강하고 더 사랑스러운 단어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앉은뱅이라는 말은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며 “귀머거리, 벙어리 이런 말도 같은 의미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전에 담긴 앉은뱅이 뜻은 하반신 장애인 중에서 앉기는 해도 서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어 김 대표는 “우리 밀이 어떤 이유로 앉은뱅이 밀이라고 불렸는지 알지 못한다”며 “이 밀 자체는 물론이고 이 밀로 만들어진 가공품에도 버젓이 앉은뱅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에서 우리 밀을 소개하는 자료를 보면 토종 밀을 앉은뱅이 밀로 표현했다. 농촌진흥청은 ‘우리 밀은 최소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토종 밀인 앉은뱅이 밀은 세계의 기아를 구제한 녹색 혁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토종 밀을 토대로 만든 가공품도 앉은뱅이 술, 앉은뱅이 밀가루, 앉은뱅이 쿠키, 앉은뱅이 과자 등으로 불리고 있다.

아울러 김 대표는 앉은뱅이라는 표현에 상처받는 이들이 있다고 알렸다. 그는 “지인 중에 장애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있는데 그분 아이가 척추가 기형이라 휠체어를 이용한다”며 “지체장애가 있는데 다른 사람보다 키가 훨씬 작게 자랄 수밖에 없어 앉은뱅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가 너무 싫어하고 운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장애유형이 지체장애인으로 100만명이 넘게 있다”며 “앉은뱅이라는 글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마음 아파하는 분도 많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본인들은 작고 귀엽다는 뜻으로 쓰는지 모르겠지만, 토종 밀 품종 자체가 앉은뱅이 밀로 고유명사화 되어서 쓰이고 있다”며 “판매자분들께도 (바꿔달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사실 농촌진흥청에서 품종 자체에 대한 이름을 정할 때 첫단추를 잘 끼웠어야 했다”고 오는 20일 장애인 날을 맞아 앉은뱅이 밀 이름을 바꿔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에 토종 우리 밀을 ‘앉은뱅이 밀’로 설명하고 있다.(사진=농촌진흥청 홈페이지 갈무리)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