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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동선 따라가면 삼성 미래 전략 보인다

피용익 기자I 2020.07.17 15:28:54

올 들어 국내외 사업장 12곳 방문…간담회만 7차례
반도체 초격차 유지하면서 배터리·전장 등 강화 전략
사장단 수시 소집하고 재계 2위 현대차와도 협력 모색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17일 삼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서만 국내외 사업장 12곳을 방문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단순히 사업을 점검하는 차원이 아니다. 현장 임직원들과 7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갖고 위기 대응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발신하는 메시지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중, 한·일 갈등,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등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미래가 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6일 기자회견에서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의 현장 경영 동선을 따라가 보면, 그가 언급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와 ‘신사업’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업계에선 삼성이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업계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한편, 미래차 등 새로운 분야에서 사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지난 1월 2일 이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개발 현장인 삼성전자(005930) 화성사업장을 방문해 세계 최초 3나노미터(nm·10억분의 1m) 공정 개발 성공을 보고 받으며 새해 첫 경영 행보를 시작했다. 이 부회장이 연초부터 반도체 개발 현장을 찾은 것은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또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며 “또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하자”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2일 경기도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설 연휴인 1월 27일에는 브라질을 방문해 삼성전자 마나우스 법인을 찾았다. 마나우스 법인은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 등을 생산하는 곳이다. 1월 28일에는 브라질 상파울루 법인을 방문해 현지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캄피나스 공장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에서 나온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개척자 정신으로 100년 삼성의 역사를 함께 써 나가자”며 “오늘 먼 이국의 현장에서 흘리는 땀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27일 삼성전자 마나우스 공장 생산라인 내 스마트폰과 TV조립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2월 20일 다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찾아 극자외선(EUV) 전용 반도체 생산시설 ‘V1 라인’을 직접 살펴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EUV는 노광기술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 광원을 사용해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초격차’ 기술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우리는 이 자리에 시스템반도체 세계 1등의 비전을 심었고, 오늘은 긴 여정의 첫 단추를 채웠다”며 “이곳에서 만드는 작은 반도체에 인류사회 공헌이라는 꿈이 담길 수 있도록 도전을 멈추지 말자”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사진=삼성전자)
코로나19가 확산 추세에 있던 3월 3일에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으로 향했다. 당시 구미사업장에서 확진자가 나온 직후였다. 이 부회장이 이곳을 직접 찾은 것은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듣고 격려해주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은 임직원들과 만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일선 생산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비록 초유의 위기이지만 여러분의 헌신이 있어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월3일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자,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3월 19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부회장은 직접 디스플레이 패널 생산라인을 살펴본 뒤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곽진오 삼성디스플레이연구소장, 신재오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지원실장 등과 함께 회의를 갖고 사업 전략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힘들겠지만 잠시도 멈추면 안 된다”며 “신중하되 과감하게 기존의 틀을 넘어서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기 이후를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라며 “흔들림 없이 도전을 이어가자”고 주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충남 아산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방문해 ‘퀀텀닷(QD)-디스플레이’ 기반 TV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3월 25일 이 부회장은 ‘삼성 연구개발(R&D)의 심장’으로 불리는 수원 삼성종합기술원을 찾아 신기술 연구개발 현황을 보고받고, 차세대 미래기술 전략을 점검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양자 컴퓨팅 기술 △미래 보안기술 △반도체·디스플레이·전지 등의 혁신 소재 등 선행 기술에 대해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미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국민의 성원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혁신이다”며 “한계에 부딪쳤다 생각될 때 다시 한번 힘을 내 벽을 넘자”고 당부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사진=삼성전자)
5월 13일에 있었던 이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단독 회동에는 재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삼성SDI 천안사업장에서 만나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과 현대차(005380)는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자동차 전자장치(전장) 사업도 협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만남은 이 부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신사업’을 언급한 이후 첫 공식 행보였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배터리와 전장 사업을 하고 있는 삼성이 전기차 등 미래차 분야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1월 2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김영주 대한무역협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부회장은 코로나19의 확산 상황에서도 글로벌 경영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5월 18일 중국 시안에 위치한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향과 대책을 논의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부회장이 해외 현장 행보를 재개하는 첫 장소로 시안 반도체 공장을 택한 것은 ‘반도체 2030’ 비전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 달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과거에 발목 잡히거나 현재에 안주하면 미래가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며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18일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부회장의 반도체 ‘초격차’ 행보는 6월에도 이어졌다. 6월 19일 이 부회장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사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반도체 미래 전략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과 사장단은 △차세대 반도체 개발 로드맵 △메모리 및 시스템반도체 개발 현황 △설비·소재 및 공정기술 등에 대한 중장기 전략 △글로벌 반도체 산업환경 변화 및 포스트 코로나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간담회 이후 반도체 연구소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 중인 연구원들을 찾아 격려하며 임직원들과 함께 ‘반도체 비전2030’ 달성 의지를 다졌다. 이 부회장은 연구원들에게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19일 삼성전자 반도체 미래전략과 사업장 환경안전 로드맵을 점검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반도체 연구소를 찾았다. (사진=삼성전자)
6월 23일에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소비자가전(CE) 부문 주요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미래 전략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과 사장단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제품 개발 현황 △프리미엄 제품 판매 확대 △온라인 사업 강화 및 중장기 전략 등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자칫하면 도태된다”면서 “흔들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자. 우리가 먼저 미래에 도착하자”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23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아 차세대 가전 제품을 직접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6월에는 사법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이 부회장의 발언에선 위기감이 감지됐다. 6월 26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 및 ‘불기소’ 권고가 나온 후에도 검찰의 기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였다.

이 부회장은 6월 30일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자회사인 세메스(SEMES) 천안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불확실성의 끝을 알 수 없다. 갈 길이 멀다”며 “지치면 안된다. 멈추면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이 부회장의 절박하고 답답한 심경이 그의 발언에서 드러난다고 해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월30일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사업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하반기에도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은 7월 6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에 참여 중인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미래를 향한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미래는 꿈에서 시작된다. 지치지 말고 도전해 가자.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자. 오직 미래만 보고 새로운 것만 생각하자”고 당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월6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C랩 갤러리’를 찾아 사내 스타트업 ‘릴루미노’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부회장의 미래차 관련 행보도 계속됐다. 이 부회장은 7월 16일 삼성전기(009150) 부산사업장을 찾아 자동차 전장용 적층세라믹축전기(MLCC) 전용 생산공장을 점검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부회장이 부산을 찾은 것은 최근 △5세대 이동통신(5G)·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 발달 △전기차·자율주행차 확산 △차량용 전장부품 수요 증가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장용 MLCC 사업을 직접 살펴보고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선두에 서서 혁신을 이끌어가지 못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며 “현실에 안주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불확실성에 위축되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끊임없이 도전하자”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7월16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위치한 전장용 적층세리막축전기(MLCC) 전용 생산 공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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