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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패권 다툼 격화…불똥 튄 韓 기업들 긴장"

방성훈 기자I 2022.08.22 15:29:15

美, 자국시장 영향 없어도 中 반도체굴기 기여시 총력 저지
韓반도체 업체들, 中 반도체 굴기 압박 핵심 급소로 여겨져
“美, 반도체 장비 對中 수출 제한 등 韓기업 압박 가능성"
반도체 지원법…"내용보다 왜 만들었는지가 중요"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이 경쟁이 격화하면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등이 점차 높아지는 미 정부 대(對)중국 견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경영·투자 전략을 수정하거나 다시 짜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AFP)


美, 자국 시장 영향 없어도 中 반도체 굴기 저지 총력

FT는 지난해 중국 사모펀드 ‘와이즈로드’가 한국의 반도체 업체 ‘매그나칩 세미컨덕터’ 인수를 추진했다가 지난해 12월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를 소개했다. 신문은 “매그나칩은 미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긴 하지만 이는 명목일뿐, 미국에서 제조, 연구·개발(R&D), 판매 등과 같은 실질적인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 규제당국은 인수·합병(M&A)에 개입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부교수는 “CFIUS는 전통적인 안보 문제에 관여하면서 미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자그마한 반도체 업체의 인수를 저지했다. 이는 전체 반도체 산업에 매우 중요한 신호였다”고 부연했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강경책으로 돌아서고,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신호탄 성격이었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서명을 마친 반도체 지원법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에 신규 공장 건설 또는 기존 공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 연방 정부로부터 보조금 및 세제 혜택 등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법안에는 미 연방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비우호국에서 28나노 미만 첨단 기술 등에 대해선 신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조항도 담겨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서 낸드플래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최첨단 반도체는 생산하지 않고 있다. TSMC 역시 대만 정부가 중국 본토 내 최첨단 칩 생산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대중국 투자 제한과 관련해 반도체 지원법이 이들 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수석분석가는 “중국 사업을 업그레이드하거나 확장하는 것엔 여전히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은 지난달 관영 글로벌타임스 사설을 통해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거대한 중국 시장과의 디커플링은 상업적 자살과 같다. 미국은 지금 한국에 칼을 내밀며 자살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기업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압력 행사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만 중국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반도체 생산과 기술 개발을 외국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가할 수 있는 제재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칩을 수입하지 않으면 중국의 전자제품 산업 자체가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美, 한국을 中 반도체 굴기 압박 핵심 급소로 간주”

미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진 것은 반도체 동맹 ‘칩4’에 한국·대만·일본을 끌어 들여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칩4 동맹이 미 반도체 산업의 R&D, 보조금, 공급망 정책을 재조정하기 위해 고안된 만큼, 미국의 결집 노력에 따라 각국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세계 반도체 산업을 선도하고 있으며, 중국 시장에 대한 노출도가 매우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중국에 500억달러의 칩을 수출했다. 이는 2020년보다 26% 증가한 규모로 전체 칩 수출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동시에 반도체 생산 장비는 미국, 일본, 유럽의 소수 설계업체 등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압박할 수 있는 ‘핵심 급소’(main choke points)로 여겨지고 있다.

파텔은 “미국은 고급 낸드 메모리 칩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칩 제조 장비를 중국 공장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등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일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국에서의 생산 점유율이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을 도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업의 중심축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길 것인지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딜레마다. 이와 관련, 미 로펌 애런트폭스 쉬프의 데이비드 행크 파트너는 “칩 제조업체들은 법안 자체가 아닌 법안을 제정한 ‘정신’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미 정부는) 각 기업들이 중국의 기술 발전에 얼마나 기여해 왔는지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며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과 상원 모두 탈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더욱 매파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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